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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17. 2022

털실



  뜨개질이 치매 예방에 좋대. 그 말에 나는 곧장 털실과 코바늘을 샀다. 보드라운 털실의 촉감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해 주었다. 마침 입는 옷의 두께도 두꺼워졌겠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목도리 뜨는 법을 검색했다. 액정에 떠오른 화면대로 손 모양을 따라 하는데 아들의 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아들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머리에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 앞에 허리를 굽힌 채 앉아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내일모레면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녀석이 취직할 생각은 없고. 당장이라도 저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절로 나오는 한숨에 말없이 문을 닫았다. 다시 코바늘을 잡으려는데 이번엔 쾅, 하고 책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리 관자놀이를 눌러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티브이를 켜 소리를 크게 키웠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다시 스마트폰 영상에 집중했다.

 뜨개질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도중 코를 잘못 끼워 순서가 어긋나기도 하고, 매듭이 풀어져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편해지는 듯했다. 천천히 짜이는 목도리를 보면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노래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단 한 번도 아들의 방을 쳐다보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목도리를 내려놓고 목을 천천히 돌렸다. 우두득, 소리에 곧장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벌써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있었다. 그제서 나는 굳게 닫힌 아들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티브이 소리를 줄여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아들, 저녁은? 잠시 동안 방문 너머가 고요했다. 그러다 살짝 문이 열리더니 아들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알아서 갖다 줘. 아들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문을 닫았다. 그때, 스마트폰에서 문자 알림이 울렸다. 그 위로 서방님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오늘 집에서 먹으니까 밥 내 것도 해놔. 나는 신음을 뱉으며 저리는 무릎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마 위에서 탁탁, 소리가 났다. 칼날을 스친 양파는 일정한 크기로 썰려나갔다. 코바늘은 스쳐질 때마다 크기가 길어지는데 칼은 스쳐질수록 점점 짧아지는구나. 불현듯 든 생각에 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파 위에 놓인 털실과 코바늘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거실로 가 뜨개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어록 열리는 소리에 다시 칼을 쥐어잡았다. 남편이 들어오자 담배 냄새에 찌개 냄새가 묻혔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여보, 담배 끊는다면서요. 남편은 아무런 대답도 않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 나는 한숨을 고르고 다시 칼질을 시작했다. 머릿속은 온통 뜨개질 생각으로만 채워졌다. 탁탁, 소리가 아닌 코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더 듣고 싶었다. 그런데 양파를 받치고 있던 왼손이 따가웠다. 고개를 숙이니 칼에 베인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가 묻은 양파를 보자 뜨개질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다. 베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싱크대에서 양파를 닦는데 이상하게 눈앞이 흐릿해졌다. 왜일까. 왜 눈물이 흐르는 걸까. 혹여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굳게 닫힌 아들의 방,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는 남편. 나는 괜히 양파가 맵네,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식사하세요. 남편이 있는 방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그릇에 밥과 찌개, 반찬을 담아 아들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내 밥을 푸지 않고 곧장 거실로 향했다. 코바늘을 잡자 배고픔도, 칼에 베인 상처도 모두 잊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듣기 싫었던 남편의 입맛 다시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느덧 뜨개질이 익숙해졌는지 엉키는 경우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칭칭 두를 만큼 길진 않았만 제 역할을 할 만한 목도리가 완성되었다. 동글동글했던 털실에서 이렇게 귀여운 목도리가 완성되다니. 나는 목도리를 강아지 껴안듯 껴안았다. 푹신한 기분에 입가에 주름이 깊어졌다. 남편이 식탁에서 일어났다. 역시, 식기를 담가놓지도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의 방에 가보았어도 남편과 똑같았다. 책상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그릇, 컴퓨터를 뚫어져라 보는 아들. 나는 목도리를 쥔 손을 바르르 떨었다. 세게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들과 남편의 것까지 짜려고 한 털실을 모두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쾅, 하고 크게 울린 소리에도 아무도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겉옷을 챙겨 입었다. 찬 바람을 맞아도 붉어진 얼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걷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그냥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그때, 한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날개 사이에 달린 거울, 나는 벽에 다가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활짝 펴진 날개 사이에 예쁜 목도리를 두른 내 모습에 절로 실소가 나왔다. 그런데 한껏 늘어난 주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화장을 안 한지도 꽤 된 것 같았다. 그래, 괜찮아지겠지.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럼에도 발걸음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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