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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19. 2022

어쩌다 그런 걸까


 

  “여보 코트가 다 해졌잖아요. 좀 새로 사 입어요.”

 아내가 코트를 걸레짝 쥐듯이 쥐고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코트 뒤에는 보푸라기가 잔뜩 있었고 색도 다 빠져있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인 뒤 스마트폰을 집었다. 아웃렛 쇼핑몰에서 코트를 검색했지만 밑에 달린 가격에 입이 떡 벌어졌다. 결국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코트를 검색하려는데 우연히 ‘친절한 이웃’이라는 닉네임의 게시글이 보였다. 중고 서적 팝니다. 나는 그가 파는 책을 쭉 훑어보았다. 책은 A급, B급, C급으로 나뉘어 팔렸다. 구분의 기준은 책의 상태보단 판매량인 듯싶었다. 심지어 졸작의 C급 책은 B급 책 다섯 권을 사면 덤으로 한 권 줬다. 닉네임에 걸맞게 각 책마다 그의 평가도 한 줄씩 실려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 한 강, 그녀의 묘사는 마치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간 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런데 C급 책에서 내 이름이 보였다. 김시오, 실망스러운 묘사, 어설픈 발상. 꼴에 친필 사인본. 불친절한 한 문장을 보자 나도 모르게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코트를 사려던 것도 잊고 곧장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B급 책 다섯 권을 사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네, 금액은 총 2만 원이고 주소 알려주시면 입금 확인되는 대로 택배 붙이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집에 택배 받을 사람이 없어 직거래는 안되냐고 물었다. 그가 일산에서만 직거래를 한다고 하자 나도 일산에 산다고 말했다. 토요일 오후 두 시, 주엽역 앞. 대화가 끝나갈 무렵 나는 잠시만요, 하고 그를 잡았다. 덤으로 증정되는 C급 책으로 김시오 작가의 소설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는 그것도 같이 준비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무심하게 전화를 끊었다. 친절한 이웃은 개뿔, 보아하니 책 한 번도 안 읽어본 사람 같구먼. 나는 연신 욕설을 중얼거리며 곧장 서울행 KTX를 예매했다. 광주에서 서울, 서울에서 또 일산. 아내가 코트를 사라고 준 돈과 맞먹는 교통비였지만 어떻게든 그 녀석의 낯짝을 보고 싶었다.

  

  사전답사를 핑계로 아침 일찍 집을 나왔다. 서울행 KTX에 올라타자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했다. 친필 싸인을 한 책이라면 분명 한 번은 얼굴을 봤던 사람일 거다. 더군다나 사인회에 온 사람은 열 명 남짓이었으니 더욱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마침내 서울역에 도착했다. 다음은 충무로역으로 가 3호선을 타고 또 한 시간을 달려야 했다. 지옥 같은 한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이동에 몸도 저리고 두통도 몰려왔지만 쉽게 눈이 감기지는 않았다. 문득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다행히 제시간에 맞춰 주엽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앞에는 짧은 투블럭 머리를 한 남자가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저…… 책 거래 맞으시죠? 조심스레 다가가 묻자 그는 아, 네.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사인회에서 본 사람은 아니다. 그가 종이봉투를 건네며 확인해보라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는 책을 한 권씩 훑어보는 척했다. 일부로 내 책은 맨 마지막으로 미뤄두었다. 그는 앞에서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다리를 떨었다. 이윽고, 내 책 맨 앞장을 펼쳤다. ‘친절한 나은 씨에게 감사드리며, 작가 김시오.’ 그의 이름은 아닌 것 같았지만 괜히 그에게 물었다. 성함이 나은 이신가 봐요. 내 말에 그는 인상을 팍 쓰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어, 하고 짧게 소리 내더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책 표지 앞에 실린 내 사진을 보고 내가 책의 주인임을 알아본 듯했다. 나는 등을 돌리려는 그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왜 이 책이 덤으로 증정되는 거죠?”

  그는 대답도 않고 내 손을 뿌리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쫓아가서까지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저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종이가방을 바라보았다. 아, 돈도 아직 못 줬는데……

 다시 광주행 KTX를 예매했다.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 멍하니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그 남자다. 한 시간이 넘어서야 못 받은 돈이 생각난 건가. 전화를 받으니 그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 나은이 알아요? 나은이는 정말 친절했나요? 내가 당신이 나은이에게 쓴 싸인을 얼마나 들여다보았는지 모르겠어. 결혼까지 약속했는데 씨발, 당신도 나은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죠? 이거 다 나은이 책이에요. 난 책 좆도 몰라요. 근데 당신 책이 좆같은 건 알아요. 나은이가 당신 책을 얼마나 나한테 얘기했는데. 씨발……”

  몇 초간의 정적 후에 통화 종료음이 울렸다. 창밖에선 천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일산까지 간 건 내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먼저 부끄러움을 준 걸까. 나는 그제서 감기지 않던 눈을 감았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다시 그 중고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친절한 이웃’을 검색하니 그가 올렸던 책들은 모두 내려가고 없었다. 책이 전부 팔려서 내린 건 아닐 거다. 아마도 이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또 다른 결과로 쉽게 글을 쓸 수 없었다. 내 글이 부끄러워서일까, 아님 또 내가 먼저 남에게 부끄러움을 주는 게 두려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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