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오 Dec 22. 2022

지진


  찰나의 떨림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개를 들었을 땐, 온통 흙먼지들이 뒤덮여 시야를 가렸다. 집은 차마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다른 곳도 똑같을까?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우거진 나무들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퀴퀴한 냄새에 헛기침이 나왔다. 그러나 내 목소리만 메이리 쳤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엉덩이가 푹 들어갔다. 내가 앉은 즈음에 침대가 놓여있었구나. 바닥을 짚은 손에 무언가가 집혔다. 검게 그을리고 찢어졌지만 이번 달 달력이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달력을 구겨 던지려고 하는데 잔뜩 쌓인 잔해들 사이로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누런 이.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내 갑자기 그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나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의 신음소리가 초라하게 새어 나왔다. 너덜거리는 발목, 뱀처럼 흐르는 피.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살려주세요…… 그가 입을 간신히 벌려 말했다. 그 말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곧장 그를 둘러업어 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향했다.


 대피소 안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사람들로 북적였다. 의사를 만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등 뒤에서 다시 신음이 들렸다. 나는 등에 업힌 그에게 일단 진정하라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나도 따라 진정이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익숙한 느낌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간호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녀는 바닥에 담요를 깔더니 환자를 눕히라고 시켰다. 그리고 금방 의사를 데리고 온다고 말한 뒤, 재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끙끙 앓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옷, 낯이 익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옷을 빤히 쳐다보았다. 틀림없었다. 분명 며칠 전, 물건을 정리하며 버린 옷이었다. 이제 보니 그가 입은 옷 중에 내 것이 아닌 게 없었다. 가장 소름 끼친 건 내가 편하다고 느낀 그의 냄새는 내 샴푸 냄새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등을 돌렸다.

 찬물로 세수를 했지만 팔에 돋은 닭살은 사라지지 않았다. 휴지를 버리려 쓰레기통으로 향하는데 문득, 주머니에 든 달력이 떠올랐다. 달력을 꺼내보니 오늘 날짜에 붉은색으로 디데이라고 동그란 표시가 있었다. 오늘을 기준으로 전 날엔 온통 하루 계획으로 가득했다. 반면, 내일부턴 아무것도 없이 쭉 빗금만 쳐져 있었다. 아, 오늘 내가 계획한 날이었지. 출구로 나가는 발걸음이 어딘가 모르게 무거웠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그때, 전단지를 든 한 여자가 내 어깨를 치고 갔다. 나는 그녀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그녀는 급하게 종이들이 잔뜩 붙은 벽에 손에 쥔 전단지를 붙였다. 불현듯, 호기심이 생겼다. 벽에 붙은 종이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지진으로 인해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전단지였다. 급하게 썼는지 모두 글씨가 삐뚤빼뚤했다. 그중 유독 눈에 밟히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짧은 머리,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틀림없는 집에서 본 그 남자의 얼굴이었다. 남자의 실종 시기엔 몇 년 전 날짜가 적혀있었다. 나는 글씨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딸의 죽음으로 정신 이상이 생긴 그는 잠시 숲 속에서 요양을 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간호사가 그를 인솔하던 차, 갑자기 그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가 가려던 곳은 집에서 멀진 않았지만 연신 관광객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해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전단지를 다 읽고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가 왜 도망쳤는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여기에 의사 없을까요? 있으면 제발 도와주세요. 간호사가 간절하게 외쳤다.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다. 이제 보니 그를 업은 손에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수술사고, 환자 사망, 온갖 단어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살려주세요…… 북적이는 와중 희미한 목소리에 질끈 감은 눈을 떴다. 소리가 난 곳엔 남자가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얼마나 간절히 살고 싶던 걸까.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뒤, 번쩍 손을 들었다. 제가 의사였습니다. 드디어 간호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를 따라 가는데 툭, 하고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뒤를 보니 집에서 가져온 달력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등을 돌렸다. 살려달란 외침이 대피소 안에 가득 울렸다. 나는 장갑을 끼며 중얼거렸다. 아직 살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그런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