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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May 19. 2024

나쁜 놈


  어느 날 머리가 복잡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몰아 무작정 고속로를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도 없이. 길가에 아카시아 꽃이 활짝 펴있어 꽃향기가 진했다. 차 유리문을 모두 내리고 꽃향기를 맡으며 꿀꿀한 기분을 달랬다. 진한 아카시아 꽃향기는 심연까지 들어와 향기롭게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꿀벌 한 마리가 차 안으로 들어와 앵앵되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어찌 이런 일이. 벌이 달리는 차속으로 무임승차를 한 것이다. 순간 골머리 아픈 생각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차 안으로 들어온 벌을 어떻게 밖으로 내보내야 할지 그것이 관건이었다.

  차문 유리를 모두 내려도 벌은 밖으로 쉽게 나가지 않았다. 바람 때문인지 계속 차 뒤 유리에 부딪쳐 앵앵되며 헤딩을 했고, 나갔나 하고 다시 차문을 닫으면 앞 유리로 날아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렇게 한동안 왔다 갔다 하며 헤딩을 했다. 결국 열이 받은 벌이 죽기 살기로 앵앵되며 필자에게 덤볐다. 순간 필자는 공항상태가 됐다.

  고속도로라 차를 세울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벌이 가까이 오면 손으로 쫓으며 운전을 하자니 미칠 것 같았다. 벌에 신경을 쓰느라 차가 갈지자로 갔다. 차들이 빵빵대며 지나갔고, 아찔한 순간을 몇 번 넘기고 나니 이러다 벌에 쏘여 죽는 것보다 사고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 무임승차한 놈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자니 필자도 열이 받아 꿀벌에게 버럭 화를 냈다.

  “야, 이 나쁜 놈아! 네가 멋대로 내차에 무임승차 했잖아? 나한데 왜 그러는 거니? 차비 달라고 안 할 테니까 가만히 좀 있어라! 휴게소에 가서 내려줄게. 어휴 미치겠다. 정말.”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별짓을 다해도 벌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순간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말벌은 계속해서 쏘기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지만, 꿀벌은 착해서 자신을 건들지 않으면 잘 쏘지도 않고, 화가 나서 공격할 때 딱 한 번만 쏘고 죽는다고.

  ‘그까이꺼 뭐 한 번쯤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무섭지 않았다. 결국 난 휴게소까지 무임승차한 녀석과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차문 유리를 모두 닫고 천천히 운전했다. 얼굴만 안 쏘이기를 바라며. 그래도 벌이 얼굴 쪽으로 와서 앵앵되면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기겁을 했다. 그러면 또다시 차는 갈지자로 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순찰차가 따라붙었다. 차를 갓길에 대라고 신호를 했다. 차를 세우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차가 왔다 갔다 해서 음주운전 같다고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음주가 아니고 무임승차한 놈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 차를 힐끗 쳐다보고 나서 기분 나쁠 정도로 무례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내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경찰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나서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장난 안거든요!”

  다른 경찰이 내 차 안을 다시 살피더니 필자와 대화 중인 경찰에게 보고하듯 말했다.

  “차 안은 아무도 없지 말입니다!”

  “사람이 아니고 꿀벌이예요. 벌이 차 안으로 들어왔는데 아무리 해도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벌을 쫓다가 그렇게 됐어요.”

  “벌이요……?”

  “네.”

  그래도 경찰은 지극히 사무적이고 딱딱한 어조로 음주측정을 강요했다. 내 말을 믿는 것 같지도 않고, 계속 필자를 노려봤다. 하는 수 없이 음주측정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를 확인한 경찰이 그제서야 얼굴의 굳어진 근육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조금 전의 건조하고 딱딱한 말투는 걷어 들이고 부드럽게 말했다.

  “차 안에 벌이 있다고요?”

  “네, 차 유리를 내리고 운전했는데 갑자기 차속으로 꿀벌 한 마리가 들어왔어요.”

  경찰들은 차량 안을 샅샅이 살폈다.

  “저기요. 벌을 찾으면 다치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경찰은 필자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차량 안을 뒤지더니 의자 밑에 붙어있는 꿀벌을 찾아냈다.

  “찾았다. 여기 있네요.”

  경찰이 벌을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처음엔 움직임이 없었다. 벌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벌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놀라고 겁날을까 싶다. 먹고 살기 위해 밥벌이 하려고 나왔다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왔다 갔다 했으니 멘붕이 되었을 것이다. 벌은 그렇게 잠시 동안 기절해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사는 세계로 무사히 돌아갔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돌아오는데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 뒤로 운전할 때 차문을 잘 내리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처럼 불청객인 나쁜 놈이 또 무임승차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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