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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Aug 25. 2024

나가며 - 유서를 쓰다


   언제부터인가 필자는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유서를 써놓고 집을 나가게 되었다. 혹시 모를 신들의 장난에 대비해서. 세상을 살만큼 살면서 축적된 경험이기도 하고, 만약이라는 결과물에 대한 간편함일 수도 있고, 내 삶의 잔고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살고자 하는 바람일 수도 있다.


  죽음은 준비된 것이 아니므로 막상 가족의 죽음 앞에선 망자에 대한 슬픔보다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장례절차도 힘든데 간혹, 채권자인데도 채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슬픔도 잊어버리고 지긋지긋하기 때문에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장례절차가 까다로운 이유가 망자에 대한 슬픔을 잊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한 것이 유서다. 살아서 유서를 미래 써놓음으로써 자신을 돌아보며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 사회가 원하는 너절한 일들을 보다 쉽고 간편하게 처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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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아들,

  네가 이 글을 읽을 때는 엄마는 너의 곁에 없겠지? 엄마가 살아 있는 한 이 글을 읽을 일은 없으니까.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겁먹거나 슬퍼하지 말고 냉정하게 차근차근 정리해.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는 것이 명제다. 그리고 절대로 연명치료는 하지 말거라. 연명치료거부 확인서에 사인했다. 의사나 간호사가 숨 쉬는 것을 편하게 해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노’라고 대답해. 그것은 자연에 유배되는 거란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례는 화장을 부탁한다. 엄만 죽어서도 글 쓰며 지낼 거야. 그리고 카톡 친구에게만 연락하고, 카톡을 숨긴 사람에게는 연락하지 말거라. 마지막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10명도 안 된다. 간소한 게 좋지. 원고들은 엄마가 작품집을 낸 청어출판사 사장님과 의논해서 정리하고, 동화책은 그림 동화로 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진검은 무기이므로 경찰서에 반드시 무기허가증과 함께 반납해야 한다. 엄마처럼 검을 사용한 사람은 검의 기를 눌러놔서 괜찮은데 검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 일반인이 진검을 소유하고 있으면 가위에 눌려서 집안사람에게 해가 된다. 진검의 기는 매우 강한 살기이므로 꼭 경찰서에 반환해야 한다.


  엄마의 반지와 목걸이는 네 아내 될 사람에게 주고, 그리고 만약에 인세가 나오면 수입의 10%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후원해 주면 고맙겠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린 시절 배를 많이 곯았다. 쌀이 없어서 배를 곯은 게 아니고, 밥 해 줄 사람이 없어서 배를 곯았지. 그래서 엄마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어떻게 엄마노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 일하느라고 바빠서 잘 챙기지 못해 많이 미안하다. 서운한 것이 있다면 엄마가 부족해서 그러니 네가 너그럽게 이해해 다오. 세상에 너만 홀로 남겨놓고 가서 정말 미안하다. 너도 빨리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아들,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 이상.     


1. 엄만 채권자도 채무자도 아니다. (빚이 없다는 말이다.)

2. 연명치료 거부함

3. 화장할 것

4. 카톡 친구에게만 연락하고, 카톡을 숨긴 사람에게는 연락하지 말 것.

5. 원고는 청어출판 사장님과 의논해서 처리할 것.

6. 인세의 10%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후원할 것.

7. 진검은 반드시 무기허가증과 함께 경찰서에 반환할 것.

8. 반지와 목걸이는 아내 될 사람에게 물려줄 것.

9. 이유 없이 친절을 베풀며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할 것.

10. 가족이든 친척이든 누구든 간에 속내를 다 보이지 말 것.

11. 모든 말은 본인의 입에서 나와 본인의 귀로 다시 들어가므로 말을 조심할 것.

12. 세상엔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으므로 척을 지지 말 것.

13. 돈이든 앎이든 그 무엇이든 자랑질하지 말 것.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고 재수 없음)

14. 가족이든 친척이든 그 누구든 절대로 보증은 서지 말 것.

15. 돈거래는 하지 말 것. (돈을 빌려주면 받을 생각 말고 줄 것.)

16. 사치와 허영심이 많은 여자는 멀리 할 것.

17. 마지막으로 엄마 보고 싶다고 울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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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조금은 쓸쓸하지만 그래도 괜찮아’를 10회 걸쳐 연재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연재를 마치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시와 수필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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