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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화

by 루아 조인순 작가

햇볕이 내리쬐는 7월의 한낮 30도가 넘는 땡볕더위에 벗과 길상사 문화탐방을 갔다. 한성대 6번 출구로 나와 길상사 가는 길은 80~90년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이 운치 있고 안정감을 준다. 진정한 부자는 성북동에 많이 산다는데 높고 웅장한 돌담 위로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집들이 보인다.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는 번지가 없어져’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진다.


20분쯤 걸으니 길상사가 보이고, 영혼의 스승인 법정스님 법문이 듣고 싶어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사느라 바빠서 실천하지 못했다. 천화(遷化)가 되고 싶었다는 스님을 살아생전에 뵙지 못하고 입적한지 2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10년을 벼르고 찾아간 길상사는 일주문에 들어서니 아기자기한 모습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며 어디선가 거문고와 가야금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극락전은 절 특유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는 볼 수 없고, 대원각 그대로의 모습이라 소박한 모습이다. 처음 와본 이곳이 마치 오랫동안 드나들었던 것처럼 낯설지가 않다. 극락전 앞에 서니 한줄기 생각이 바람처럼 스쳐간다. ‘이곳이 이렇게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혹여 나도 전생에 유희를 즐기며 방탕한 생활로 가문을 더럽힌 선비는 아니었을까?’


가난에 쫓겨서 방년 16세의 꽃다운 나이로 기방에 들어와 청춘을 보내고 한평생 몸담았던 곳, 대원각을 법정스님께 보시하고 이곳을 맑고 향기로운 곳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떠난 길상화(김영한) 여사,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바위 위에 깔고 앉아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길상초가 길상화 여사의 법명이다.


그리고 한 많은 그녀의 인생길에는 천재 시인 백석이 있었다. 비록 기녀의 신분이지만 백석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니 그녀의 삶이 그렇게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몸보다 마음이 더욱 서럽고 고달팠을 그녀의 삶에 백석 시인의 사랑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가난 때문에 피지도 못하고 꺾어진 꽃들이 길상화 여사뿐이겠는가. 곳곳에 작은 전각들이 시야에 들어와 비수처럼 박혀 '말하는 꽃 기생'의 애환이 온몸으로 느껴져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근대사회에 밀실 정치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그 밀실 정치의 장이 되었던 곳이 고급 요정이다. 대원각은 우리나라 3대 요정 중 하나이며 전각들 하나하나에 기생들의 삶과 한(恨)이 담겨 있는 곳이다.


지금은 스님들의 처소로 사용하므로 맑게 정화(淨化)되었다고 본다. 제아무리 뼛속까지 사무친 한이라 해도 경내에 퍼지는 그윽한 향내와 스님들의 낭랑한 독경소리면 충분하지 않은가.


세월의 무상함 속에 대원각 주인이며 백석의 연인인 길상화 여사와 법정스님이 모두 떠나간 자리에서 법정스님 5번째 상좌인 덕운스님은 청한한 모습으로 함박꽃보다 더 환한 웃음을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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