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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딜레마

by 루아 조인순 작가


우린 모태의 태반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관계는 자기 자신이 원해서 관계를 맺는 건 아니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존하는 사람과 현존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선조와 선조들이 그러하고, 현존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그러하다. 좋은 관계는 ‘인연’이라고 하고, 나쁜 관계는 ‘악연’이라고 한다.


우린 그렇게 관계를 맺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며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로 인하여 안정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외롭고 힘들 때는 위로를 받을 때도 있지만, 때론 상처받고 아파하고 섭섭해 하며 슬퍼할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상처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 게 아니고, 우리라고 생각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는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래간다. 때론 그 상처가 너무 오래 묵어 처음에는 눈곱만 한 상처가 눈덩이처럼 커져 쌓이고 쌓이다 보면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라고 말하며 절규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고슴도치 딜레마’는 특별한 게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존중을 중시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그게 가족이라 해도. 모든 인간관계에서 존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 ‘고슴도치 딜레마’는 추운 겨울 너무 추워서 혼자 있으면 너무 추워 얼어 죽을 것 같아 서로 가까이 있고 싶은데 가까이 가면 가시에 찔려서 가까이 갈 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이러하다. 우린 우리라는 사회 속에 살면서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밀함과 애증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과는 더욱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상대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꾸만 선을 넘게 된다. 가까울수록 선을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우린 상대가 선을 넘으면 말은 안 해도 몸짓으로 싫다는 의사를 정확히 전달한다. 그게 바로 몸짓 언어다. 예를 들어 상대가 선을 넘는 말을 할 때 얼굴색이 변하거나, 원하지 않는 터치를 할 때 몸을 움츠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니 경고를 했는데도 자꾸만 선을 넘는 사람이 있다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고슴도치 딜레마’처럼 과감히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그게 설사 가족이라 해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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