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세월만 빨리 가라, 가라 했었답니다. 어른이 되고 싶어 안 달 난 사람처럼 별짓을 다했습니다. 애벌레가 표피를 벗고 성충이 되듯 어서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세월을 먹어치울 수만 있다면 다 먹어치우고 싶었거든요. 굴레와 제재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영혼은 늘 외로웠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면 그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고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터널에 갇힌 것처럼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했고, 그렇게 많은 길 위에서 서성이며 방황해도 안내자는커녕 표지판도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는 순간 제재를 받지 않는 대신 책임이라는 것이 따라다녔고, 세월은 기다렸다는 듯이 걸망 하나를 어깨에 메어주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모든 짐은 그 걸망 속에 넣고 가라 하더군요. 내가 가는 길에 따라 짐은 무거울 수도, 가벼울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보니 우물쭈물하며 헛되고 부질없이 보내버린 세월만큼이나 지고 가야 할 짐이 산더미가 되어있었습니다. 너무 무거워 가족과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자신들의 짐도 무거워 죽을 지경이라고 하더군요. 젊은 땐 패기로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젠 점점 그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워 이러다 짐에 깔려 제명대로 못 살지 싶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남들은 다 아스팔트 길만 가는데 나만 진흙탕 길을 가는 것 같았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존감 상실에 울분을 토하며 주저앉기도 했었고, 어리석게도 살면서 삶의 질곡이 깊으면 깊을수록 부모님과 세상에 대한 원망도 했었답니다. 그것들이 이렇게 큰 짐이 되어 짓눌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다고 해서 목적지에 도착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부와 권력, 명예를 누리는 인생이라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은 항상 공존하며, 저마다 자신들만의 삶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어쩔 수 없이 가벼워지려면 또 한 번의 탈피가 필요했습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았다고 해서 고뇌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다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무게들을 모아 글을 쓰면서 지난날 저처럼 삶의 무게에 진눌러 길 위에서 방황하는 영혼이 있다면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슬픔에 갇혀 고통 속에 있을 때도 빛은 어디에나 공평하니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