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머물다

by 루아 조인순 작가

가을이 머물고 있는 곳을 찾아

논둑에 서서 코스모스를 가슴에 담았다.

논둑 옆에 화원을 손질하던

어느 중년의 남자와 눈이 마주쳐

순간의 어색함을 참지 못해 엷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환한 얼굴로 인사를 받던 그는

가을을 주워 담느라 정신이 없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가을을 잠시 세워두고 그의 얼굴에 시선이 꽂힌다.

생각은 빛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

기억 속의 수많은 서랍들을 열었다 닫았다

유년의 저 밑바닥을 뒤지니 그는 동창이다.

말도 잘 섞지 않았던 유년의 뜰에서

오래전 끊어졌던 인연이

세월을 앞세우고 시절 인연의 길목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데 정신이 없었고

나는 그에게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미소를 남기고 떠나온 길에서

인연이란 무엇인지

스산한 가을바람처럼 오래도록 가슴에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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