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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Feb 18. 2024

결핍에 대하여

  우린 결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한 가지 결핍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도 결핍이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결핍이 없다면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린 누구나 한 가지 결핍은 가지고 있다.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모자라거나 빠짐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외모에 대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결핍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제일 많이 겪게 되는 결핍이 있다면 그것은 가난이란 결핍이다. 가난이 진정한 결핍인가를 반문한다면 반박할 말은 없다. 안빈낙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촉각을 다투는 시간 속에 병원비가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으로 인하여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불편한 현실이 결핍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린 한 가지 결핍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결핍들은 때론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장점이 되기도 한다.

  작가 이청준은 자신의 결핍을 이렇게 말했다. 삶의 출발점이 남루해서 항상 젖은 속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고. 물론 그 시대는 거의 다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 보지만, 얼마나 삶이 버겁고 힘들면 그런 말을 했을까 싶다. 남들은 부모님 잘 만나서 뽀송뽀송한 속옷을 입고 있는데 자신만 눅눅하고 축축한 젖은 속옷을 입고 있었으니 얼마나 불편한가.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한 자신이 처한 환경적 상황에 대한 결핍이다. 그는 그 결핍으로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주옥같은 많은 작품을 남기고 떠나갔다.

  또 다른 결핍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비만 오면 미사리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었다. 그가 카페에 나타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날이 흐리거나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커피를 시켜놓고 창밖만 바라봤다. 그는 헌칠한 외모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을 걸치고 있었고, 누가 봐도 부르주아였지만, 그의 얼굴은 너무도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세상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가 고독을 씹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부유한 집안의 장남이다. 부모님이 읍내서 큰 가게를 운영해서 그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품을 떠나 조부모님 댁에 맡겨졌다. 조부모님 손에 자란 그는 학교 갈 나이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는 엄마가 보고 싶어 눈만 뜨면 동네 어귀에 있는 큰 당산나무 밑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당산나무에 몸을 기대고 읍내로 가는 먼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 길을 따라 혼자서 읍내로 갔다. 그를 본 엄마 아빠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왔느냐고 묻지도 않고 가게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동생들을 돌보느라 바빠서 자신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실망한 그는 다시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 길을 터벅터벅 걸어 조부모님 댁으로 돌아갔고, 며칠을 앓았다고 했다.     

  학교 갈 나이가 돼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자신은 늘 혼자인 것 같다고. 동생들은 잘못을 하면 부모님이 야단을 치는데 그에게는 야단을 치지 않는다고 한다. 동생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우울해하고 말이 없는 그에게 부모님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다 최고로 해주셨다.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한 미안함에 물질로 채워주었던 것이다. 그는 그러는 부모님도 싫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어린 동생들도 미웠다고 했다.  

  아동 심리학을 보면 어린아이들의 정서는 2~6세까지가 가장 활발하게 성장한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듯 그 시기에 평생 기초가 되는 정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뇌 과학자에 의하면 아이들은 두 살 정도가 되면 감각과 냄새로 세상을 본다고 한다. 엄마 냄새를 기억하는 것이 그것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세상에 대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는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했다. 언제나 부모님의 사랑에 목말라했고, 그 갈증을 채우지 못해 고독이란 늪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그에게 부모님은 무엇이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채워줬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사막이 되어버린 뒤였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살았다. 영혼이 외로운 그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풍요로움 속에서도 늘 쓸쓸함과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 결핍이란 그런 것이다. 영혼에 병이 들면 그 어떤 풍요로운 물질로도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의 정서는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였고, 동네 어귀에 있는 그 당산나무 밑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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