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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Mar 10. 2024

19금 이야기

  우리나라의 성문화는 어디까지 진보했을까? 아마도 추축해 보건대 필자가 자라던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싶다. 필자가 자라던 시절에는 성은 음지 속에 꽁꽁 숨어 있어 아무도 성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빠 언니가 몰래 읽는 삼류소설을 밤을 새워 읽고, 선데이 서울 같은 잡지를 보면서 성에 대해 눈을 떴다.

  어쨌든 필자의 어린 시절엔 지금처럼 미디어는 없었다. 언니나 사촌자매들의 몸이 변하는 것을 보고 필자의 몸도 저렇게 변하겠지 했다. 어느 날 사촌언니를 보니 가슴이 예쁘게 볼록했다. 필자는 신기했다. 며칠 전에 봤을 때는 가슴이 밋밋했는데 며칠 만에 가슴이 볼록하니 어찌나 신기하던지 궁금했다. 어느 날 사촌언니가 울 집에 와서 잠을 자는 일이 생겼다. 사촌언니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언니의 가슴을 몰래 만져보았다. 헉! 모두 뽕이었다. 필자는 그렇게 여자가 되어 갔다.

  그리고 그때는 여성들에게 정조에 대해서 강하게 억압하던 시절이라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를 쉽게 만나지 못했다. 순결은 첫날밤 남편에게 바쳐야 한다고 배웠다. 여자가 순결을 잃으면 시집은 다 갔다고 했다. 순결을 잃고 자살하는 여자들도 가끔씩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친구들 중에 좀 노는 애들은 남자를 만나고 다녔는데 남자를 만나러 갈 때는 속옷에 거들을 여러 겹 껴입고 꼭 끼는 청바지를 입고 간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남자가 옷을 벗기려다가 지레 지쳐서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 웃지 못할 황당한 이야기를 우린 배를 잡고 웃으며, 좋은 생각이라고 모두 따라하며 리바이스청바지를 하나씩 샀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을 해서도 성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연애 경험이 없으니 당연했다. 필자가 신혼을 시작한 집은 방 둘에 부엌이 딸린 전세였다. 다세대주택인데 열 가구가 살았다. 모두 필자와 비슷한 새댁들이었다. 아침에 남편들을 출근시키고 나면 새댁들이 모여 커피를 한 잔씩 했는데 거기서도 성에 먼저 눈뜬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필자 바로 옆집에 살았다. 그녀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디테일하게 말하면서 액션을 어떻게 취하는 것이 더 좋은 지도 알려줬고, 속옷도 야한 란제리만 입었다. 우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의 잠자리를 상상했다. 그건 마력이었다. 마력도 그런 마력이 없었다. 순진한 우린 날마다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녀의 집으로 몰려갔다. 손에는 간식거리를 들고. 어느새 우린 그녀에게 성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밤새 성인용 비디오를 남편과 봤다고 했다. 그러자 한 새댁이 말했다. 그런 거 있으면 함께 보자고. 필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날 성인용 비디오를 봤다. 남녀의 사랑의 대화가 아름답지 못했다. 한마디로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린 그날 그 성인용 비디오를 보면서 엄마야, 엄마야를 외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볼 건 다 봤다.

  아침마다 새댁들이 불렀다. 커피 마시자고. 결론은 그녀의 집에 모여서 성인용 비디오를 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젠 서로 돌아가면서 비디오를 빌려오라는 거였다. 창피해서 도저히 못 간다고 우기는 새댁들에게 그녀는 그녀만의 노하우도 전수했다. 스카프와 선글라스를 쓰고 가서 ‘검은 비닐봉지 하나 주세요’ 하면 된다고. 그럼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니 창피할 것도 없다고.

  새댁들은 모두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임무를 완수했다. 문제는 필자의 차례가 되었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시무룩하게 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말하면 혼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이만저만해서 내 차례라고.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성인용 비디오를 대신 빌려다 주었다. 다음날 비디오를 들고 갔더니 새댁들이 난리가 났다. 범 생인 줄 알았는데 뒤로 호박씨를 깐다고.

  그렇게 우리들의 성은 결혼을 해서도 검은 비닐봉지 속에 처박혀 음지에 꽁꽁 숨어있었다. 도덕관념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고,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떨며 남편들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입단속을 하느라 바빴다.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그러했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성이 음지에 숨어 쾌락의 전유물로만 취급되는 것은 아닌지.

  문제는 요즘 아이들은 음지 속에 숨어서 야동으로 성을 배우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몸의 대화인 아름다운 성을 그렇게 인식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얼마나 지저분하고 퇴폐적인가. 그래서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이 또한 어른들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각성해야 한다.

  필자의 아들이 사춘기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성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제 중에 난제였다. 성이 너무 노골적인 것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터부시 하는 것도 옳지 않았다. 그래서 한마디만 했다. 여자만 몸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남자도 몸을 조심해야 한다고.  사랑은 몸이 먼저 가는 게 아니고, 마음이 먼저 가고, 몸이 가야 한다고.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몸의 대화는 가학적이거나 퇴폐적이지 않고, 아름다운 것이므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다행히도 아들은 사춘기를 잘 넘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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