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그리고 계절의 마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새로 사 입는 편이다.
아니, 꼭 계절이 바뀌지 않더라도
나는 옷 입는 걸 좋아한다.
크게 사치가 아닌 이상, 마음에 드는 옷을 보면
종종 사입는다.
그래서 내 옷장엔 옷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사촌언니에게서 물려받은 옷을 입었고,
옷을 사고 싶을 때마다 “빚이 1억이야”라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꾹 참곤 했다.
그래서일까.
설날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엄마가 새 옷을 사주셨는데,
그 이유 하나로 명절이 기다려졌다.
형편이 나아진 뒤에는 엄마에게
옷을 사달라는 말을 자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예쁜 옷을 입으면 나도 따라 입고 싶었다.
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저 사람이 들고 있는 가방은 어떤 브랜드일까?’
‘저 신발은 어디서 산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눈치채지 않게 살핀다.
삿포로 여행에서도 그랬다.
거리에는 비슷한 가방을 든 여자들이 많았다.
단정하면서도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다음에 누가 그 가방을 들고 지나가면
꼭 브랜드를 물어봐야지.’
그렇게 마음먹었는데, 이상하게도 막상 물어보려 하니
그 가방을 든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으로 카페에 앉아 기다리던 중,
남편이 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닌다면
백화점에 분명 있을 거야.”
그래서 곧장 삿포로의 다이마루 백화점으로 향했다.
3층 잡화 코너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구석진 곳에서 마침내 애타게 찾던 그 가방을 발견했다.
브랜드 이름은 Hervé Chapelier(에르베 샤플리에).
파리에 본사를 둔 프랑스 핸드백 브랜드였다.
이 브랜드를 검색해 보면 ‘뭐 별거 없네’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단정한 형태와
절제된 세련미가 마음에 쏙 들었다.
일본 여성들이 왜 이 가방에 열광하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방을 살 계획은 없었다.
그래서 눈앞에 두고도 결국 사지 않았다.
그래도 매장을 나오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음에 가방을 산다면 꼭 이 브랜드로 해야지.’
남편은 “일본까지 와서 좋아하는 브랜드를
하나 만들다니 신기하네”라며 웃었다.
나도 웃었지만, 마음 한편엔 그 가방이 자꾸 떠올랐다.
옷과 가방,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 딸이 그런 점을 꼭 닮았다.
어린이집에서 친구가 예쁜 옷을 입고 오면
집에 와서 꼭 그 옷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아이와 옷에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내 아이가 딸이라서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크면 함께 옷을 고르고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어느덧 가을이 되었다.
낮에는 여전히 덥다가도, 비가 내리고 나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
선선한 바람에 또 새로운 옷을 사고 싶어졌다.
셔츠가 입고 싶었고, 도톰한 청바지도 하나 사고 싶었다.
유니클로에서 몇 번 입어봤던 바지가 있었다.
다리 모양이 어색해 보여 망설였는데,
요즘 꾸준히 요가를 해서인지 다시 입어보니 핏이 예뻤다.
그렇게 가을 옷을 장만했는데도
눈에 들어오는 후드티와 스웨이드 재킷이 있었다.
‘10월 월급날이 오면 꼭 사야지.’
그렇게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작년 가을 내내 입던 맨투맨 두 벌은
헌 옷 수거함에 넣을 예정이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맨투맨을
고를 생각에 벌써부터 웃음이 난다.
옷을 산다는 건 단순히 새 물건을 갖는 일이 아니다.
지금의 나를 입히는 일이고,
계절의 마음을 맞이하는 일이다.
봄의 설렘, 여름의 자유로움, 가을의 온기,
겨울의 포근함이 옷장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 엄마가 사주신 새 옷의 기억과
딸아이의 작은 원피스를 고르며 느낀 설렘도 함께 있다.
이 계절이 또 바뀌어도, 나는 아마 새로운
옷 한 벌에 마음을 빼앗기겠지.
그건 아마, 여전히 나답게 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