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무슨 생각해?

엄마 바라기

by 기하소

나에게는 네 살 난 딸이 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나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아이만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존재는 없다.


등원길 차 안에서 딸은 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하원할 때 먹고 싶은 것을 들뜬 목소리로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딸, 무슨 생각해?” 내가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나는 엄마 생각.”


같이 있는데도 내 생각을 한다니. 놀라 묻자, 아이는 말했다.


“나는 항상 엄마 생각해. 밥 먹을 때도, 친구랑 놀 때도, 낮잠 잘 때도, 간식 먹을 때도.”

그 작은 머릿속에 온통 엄마 생각뿐이라니.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엄마 생각 말고 아빠, 할머니, 장난감 생각도 좀 해봐.”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 마음에 있어.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장난감도. 그래서 마음에서 하나씩 꺼내서 생각해. 그래서 내 마음은 점점 더 넓어지고 커져.”

아이의 말에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걸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부터 마음속에 많은 것들을 두게 된 거야?”

아이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어. 그냥 어느 날 보니까 마음에 많은 게 있었어. 가끔은 슬픈 것도 나오기도 해.”


슬픔이라니. 혹시 내가 해주지 못한 것들 때문은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물었다.

“슬픈 건 어떤 게 있어?”

아이의 대답은 맑고 단순했다.

“초콜릿을 매일 못 먹고, 티브이를 날마다 못 보는 거.”


나는 그 순간 안도했다. 슬픔의 이유가 단순하고 해맑아서 고마웠다. 그래, 지금은 그 나이에 걸맞은 속상함이면 충분하다.


딸은 보통 오후 다섯 시쯤 하원을 한다. 집에 오기 전, 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딸은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킥보드를 타고 뛰어다니는 걸 가장 좋아한다.

며칠 전 어린이집 체육대회에서 계주 선수를 뽑는 날이 있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딸이 달리기는 빠르지만 자주 넘어져서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선수로 나가지 못한 게 속상했는지 서럽게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문일까. 초등학교 운동장만 가면 딸은 달리기에 온 힘을 쏟는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운동화 찍찍이를 꼭 붙이고는 한참을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 힘들면 운동장에 그대로 드러눕곤 한다.

“엄마, 나 정말 빠르지? 안 넘어지고 진짜 빠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아, 정말 달리기 선수가 되고 싶었던 거구나.


나는 딸에게 물었다.

“달리면서 무슨 생각해?”

저 작은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궁금했다. 혹시 며칠 전 달리기 선수가 되지 못한 일이 마음에 남아 그런 건 아닐까. 앞으로 마주할 더 큰 좌절들 앞에서도 잘 버텨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딸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엄마, 달릴 때는 달리는 생각만 해야지! 다른 생각하다 꽝 하고 넘어지면 어떡해!”

큰 소리로 호통을 치더니 곧 배시시 웃는다.


맞다. 달릴 땐 달리는 생각만 하면 된다.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걱정은 내가 하고 있었다. 정작 아이는 세상과 부딪히며, 나보다 훨씬 잘 달리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 아이는 이미 자기 길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곁에서 함께 호흡해주면 되는 거였다.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삶의 무게보다, 아이가 지닌 단순한 확신은 더 크고 또렷했다. 나는 딸 앞에서 불필요한 질문을 거두기로 했다. 정답은 이미 아이가 지니고 있으니까.


이전 02화See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