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의 바닐라 라테
2025년 8월 4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가족들은 절에서 49제가 되는 날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스님과 함께 좋은 곳에 가시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날은 다섯 번째 제사였다. 일곱 번 중 세 번은 새벽 6시에 제사를 시작했는데, 이날도 그랬다. 늦지 않으려 했지만 도착한 시간은 6시 10분. 어른들은 이미 와 계셨고, 손자 손녀 중에서는 나 혼자였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왜 이제 왔니” 하고 물으실 것 같아 긴장이 됐다.
제사는 한 시간쯤 이어졌다. 마친 뒤 절에서 식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6시까지 절에 가려면 눈곱만 떼고 나온다 해도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그날은 남편이 알람을 맞추는 바람에 5시 20분에야 일어났다. 10분 만에 준비한다고 해도 늦을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서둘러 나온 탓일까, 집으로 향하는 길에 온몸이 카페인을 찾고 있었다. 차 안에는 커피가 없는데도, 코끝에는 분명 커피 향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이 시간에 문을 연다면 아마 스타벅스뿐일 것이다. 맛이 보장되어 있고, 드라이브스루로 가면 주차할 필요도 없으니 편리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향하지 않았다.
나는 작은 카페를 좋아한다. 작은 공간이 주는 특유의 아늑함, 사장님의 취향이 묻어나는 인테리어와 음악, 그리고 한 잔의 커피까지. 그런 곳이 좋았다. 커피 맛도 달랐다. 사장님이 고소한 원두를 좋아하면 커피는 고소했고, 산미 있는 원두를 선호하면 커피는 상큼했다.
그렇게 개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오전 7시에 문을 여는 카페가 있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정말 있었다. ‘있다, 있어!’ 마치 유레카를 외치듯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카페는 학교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걸어가니 운동장에서는 이미 조기축구가 한창이었다. 나는 씩 웃었다. ‘아, 그래서 이렇게 일찍 여는 걸까?’ 하고.
카페 이름은 Seeker였다. 궁금한 마음에 인스타그램을 훑어보니, 소개 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커피를 곁들인 책 속에서 삶의 방향을 찾아요. seek-er.”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반가운 흔적도 눈에 들어왔다. 가수 강민경이 이곳의 아몬드 크림커피를 ‘최애 커피’라며 마셨다는 기록이었다. 나도 아몬드 크림커피를 마셔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지, 나의 최애는 언제나 바닐라 라테지.
분명 카페인이 부족해서 커피를 마시러 온 건데, 메뉴판에 적힌 ‘디카페인 변경 가능’이라는 글자를 보자 망설임 없이 디카페인 바닐라 라테를 주문했다. 디카페인이라도 상관없다. 커피가 오늘을 채워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커피를 기다리며 카페 책장에 꽂힌 책들을 훑어보았다. 문득 인스타그램에 적혀 있던 카페 소개 문구가 떠올랐다. 사장님의 책 취향이 나와 닮아 있어 괜히 반가웠다. ‘이 카페를 잘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 동네로 지나칠 일이 없어 몰랐는데,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친정에 오고 가다 들를 수 있다는 점도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라테의 맛이었다.
나는 우유 때문에 라테를 가려 마시는 편이다. 우유를 마신 뒤 목 안쪽에 남는 텁텁함이 싫었다. 입안이 깔끔하지 않고, 마치 하얀 찌꺼기가 남아 있는 듯한 그 끝맛이 늘 불편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우유는 늘 무언가를 섞어야만 마실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라테는 우유의 무거운 끝맛이 덜하고, 대신 커피의 고소함과 바닐라 시럽의 달콤함이 은은하게 남는 것이다. 제발 이곳도 그런 맛이길 바라며 라테를 기다렸다.
라테가 나오자 빨대로 시럽과 우유, 커피를 휘저어 한 모금 마셨다. 빨대를 타고 들어온 라테는 고소하고 맛있었다. 다 마신 뒤에도 텁텁함이 덜했다. 안도의 미소가 절로 났다.
커피를 들고 나오는데 비가 쏟아졌다. 얼른 차에 올라타자 라테 향이 차 안 가득 퍼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새벽 여섯 시 제사가 이미 끝난 것이 괜히 아쉬웠다. ‘아침 7시에 또 이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아마 9시면 몰라도 7시는 어렵겠지.’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딸아이였다.
“엄마, 언제 와?”
“엄마 커피 한 잔 사느라고! 금방 갈게.”
아침 7시는 쉽지 않겠지만, 낮에 딸과 남편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