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을 포함한 대다수의 독립운동가의 제1의 목표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들에게 이념은 궁극의 목표인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한 경향성은 1920년대에 더욱 그러하였다.
구한말이나 일제 식민지 초기의 엘리트 계층들은 자유시장경제 질서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나 체제의 강점 등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지만,
홍범도 장군과 같은 하층민들은 자유시장경제 질서라든지, 자유민주주의라든지 이런 이데올로기나 체제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들에게는 나라를 빼앗겼다는 그 사실만 중요했을 뿐이다. 일단 일본으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였다. 해방된 조국이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선택하고, 어떠한 정치체제를 선택할지는 그다음이었다.
홍범도 장군이 활동한 지역인 북간도, 만주, 연해주 등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알고 경험하기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는 너무 멀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은 1920년대 당시 우리 편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서구 열강들은 당시의 우리의 주적인 일본의 편이었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화를 승인하였고, 영국 역시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일본의 조선(대한제국)의 지배를 외교적으로 보장하였다. 그리고 일본은 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승전국의 지위를 얻었다. 1920년대 대다수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해주에 터전을 잡고 있던 홍범도 장군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편을 들지 않는 국가 중 하나인 소련의 지원을 받는 것이 필요했다.
홍범도 장군 입장에서 공산주의 이념의 관점이 아닌, 독립운동을 위해 지원을 받거나 최소한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소련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공산주의 이념 하의 소련이든, 차르가 있는 러시아 제국이든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민족주의 계열, 자유시장경제 질서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에 가까운 독립운동가 입장에서도, 주적은 일본 제국주의이요,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우리 민족의 억압에 앞장섰던 친일파였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영국, 소련은 상호 동맹 관계로 독일과 일본 등에 맞서 싸웠다. 즉, 냉전 전까지 자유사장경제 질서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공산주의 체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서로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대다수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이후, 냉전이나 북한의 남침에 의한 6. 25. 전쟁 발발하기 전까지, 한 나라안에서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기에 김구 선생님은 좌우합작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가 바로 홍범도 장군이 살았던 세상이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결과론적 시각과 현재의 시각만을 가지고 편협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해당 인물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 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몇몇 사람들은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원이었고, 6. 25. 전쟁이 소련공산당의 사주에 의해 이루어졌으니, 홍범도 장군도 6. 25. 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세도정치의 시작점인 안동 김 씨의 김조순을 자신의 아들인 순조의 장인으로 삼은 정조 역시 세도정치에 의한 조선의 망국의 역사적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것인가? 결과론적 시각으로 역사를 보면, 이렇게 심한 비약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많게는 몇 백명의 흑인 노예를 거느렸다. 현재의 가치관으로 보면, 조지 워싱턴은 인종 차별주의자다.
그러나 여전히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는다. 조지 워싱턴을 역사적으로 기리는 것은 당시에 있어서의 역사적 중요한 의미인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체제의 수립이라는 업적이다.
홍범도 장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홍범도 장군을 역사적으로 기리는 것은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의 독립에 헌신한 애국심과 소수의 병력으로도, 일본군을 무찌른 불굴의 정신이다.
당시 시대상을 기준으로, 비난거리가 아니었던 조지 워싱턴의 노예 소유 행위가 조지 워싱턴의 역사적 업적을 퇴색시킬 수 없듯이,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표면적으로 채택한, 공산주의 정당에 가입한 홍범도 장군 행위 역시 그의 항일무장투쟁이라는 역사적 업적을 퇴색시킬 수 없다 할 것이다(솔직히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가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냥 세습을 유지하는 독재 국가로 보인다).
이와 같이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현재의 시각만을 가지고 편협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편협한 사관으로, 역사적으로 기리고 존중할 인물을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변호사가 보는 우리 사회·정치의 세태. 변호사 김희원.
cf) 원 출처만 밝히시면, 얼마든지 퍼 나루셔도 상관하지, 아니 오히려 권합니다. 제가 글을 쓴 이유는 생각의 공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