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기 때문에 (1)
비가 추적추적 어둡게도 내리는 날이다. 아침이면 초롱초롱하던 눈도 오늘 같은 날은 얼어버린 동태눈깔마냥 변해서는 감정 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우울하지도 않지만 활기차지도 않다. 창문을 열 생각도 없다.
아이들에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과일부터 달걀에 빵까지 5대 영양소를 골고루 챙겨 등교시킨다.
오늘 같은 날이면 꼭 어젯밤 술 먹고 들어온 남편이 라면까지 끓여달라 조른다.
싫다 하면 알겠다고 하겠지만.. 집에서 있는 주부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오늘 같은 날에 둘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현장학습을 간다. 챙길 것도 많다.
신이 나서 방방 떠야 하는 날 이토록 차분해질 수가 없다.
나 혼자..
둘째까지 시간 맞춰 분주히 보내고 돌아왔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다 못해 바닥까지 꺼져버릴 것 같은 날이면 도서관을 향한다.
누군가 있는 곳으로 혼자 있는 공간으로부터 도피한다. 그래야만 내 마음을 들어 올릴 수가 있었다.
엉망진창인 나의 집부터 치우고 가기로 한다. 음악도 켜지 않고 티브이도 켜지 않는다. 아무것도 켜지 않는다. 돌아와 제일 먼저 하던 손도 씻지 않고 청소기부터 돌린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것, 생각나는 것부터 아무 생각 없이 해치울 생각이다.
윙윙...
머리카락 하나하나, 말라비틀어진 빵부스러기, 아이들의 작은 종이조각까지
하나하나 집어삼키며 돌아다닌다.
잡념 한 톨까지 모두 삼키고픈 마음으로 무거운 청소기를 하염없이 돌린다.
요즘은, 가을이라 그런가? 참 우울했다.
그래서 왕래라곤 딱 한 명이던 아이친구 엄마의 만남도 거절했었다. 어제저녁에도 거절했다.
요즘 들어 약속을 잡지 않고 약속을 거부하는 것이 왕왕 있는 일이다.
처음엔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두 번째엔 억지스러운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세 번째엔 좀 더 자연스럽게 그냥 집에 있고 싶다라며 거절한다.
어제도 그러했다. 저녁밥을 이미 했기 때문에 저녁약속을 거절했다.
사실은.. 밥은 하지 않았고 단지 나가고 싶지 않았다.
윙윙...
아무리 청소기로 먼지를 집어삼켜도 이놈의 잡념이 사라지질 않는다.
거절해 놓고는 내 마음에 대해 자꾸만 생각한다.
왜 자꾸 만나자고 해서 이리도 불편하게 할까? 짜증이 난다.
마음이 바닥 끝까지 내려앉을 생각인가 보다. 눈물이 핑 돈다.
이불청소를 앞두고 청소기를 때려치웠다.
배가 고픈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밥을 하러 거실을 지나쳐 부엌으로 가는데 오늘은 하지도 않은 요가매트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따가 할 것이다. 이럴 땐 몸을 써야 한다.
마음을 치유하려고 배우는 요가이니까.
오늘 같은 날은 해야 한다.
오늘 같은 날은 요가를 해야 한다.
오늘은 비가 오기 때문에 요가를 한다.
우울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