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Nov 29. 2024

눈보라가 친다. 그래서 창문을 연다.

우울하기 때문에(4)

일주일에 한 번은 기분이 가라앉는다. 

아무 일도 없어도 그렇다.

아니, 아무 일이 없어서 그럴까?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햇살이 너무 밝아서

날이 어두워서

비가 와서

그리고 눈이 와서..

날씨가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어찌나 나약한지 평생을 보고 온 그 작은 범주의 날씨에도 매번 휘둘린다.


오늘은 첫눈이 왔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 집안에 있는 것은 행복이다. 행운이다. 

우리 집엔 작은 창문이 있다. 이사를 와서는 창문이 너무 작아 바깥이 잘 안 보인다.

비도 잘 안 들어오고 바람도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좋을 때도 있고..


오늘 같은 날은 억지로 창문 앞에 딱 붙어 보았다. 눈보라가 치는데도 잘 안 보인다.

창문을 열었다. 

활짝 열리지도 않는 그 창문으로 손을 뻗어 만져보려 했다.

바람이 먼저 훅 들어왔다. 

차갑고 또 시원했다. 

창문을 꽁꽁 걸어 잠가야 할 바람과 눈이었다. 즐길 수 있는 눈이 아니었다.

굳이 창문을 열어 그 눈을 맞았다. 그 바람을 맞았다.

다운되어 있던 내 기분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쳤다.

알 수 없는 기운이었다. 


"어른이 되어도 난 눈을 좋아해야지~!"

어른이 되면 눈을 싫어하게 된다는 예전 어른들의 말에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나는 어떨까??

아이들이 눈이 오면 나가자고 할까 봐 무섭다는 생각부터 든다. 

싫은 것보다 더한 마음인 것 같아 변질된 나의 모습에 헛웃음이 난다. 

오늘은 이 눈이 참 좋다. 

창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가지고 들어오는 눈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한동안은 눈이 오면 우울했다.

첫눈이 오는 날, 나가서 만날 친구가 없어서 우울했고 

첫눈이 오는 설레는 날, 나 홀로 집안에 있어서 우울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눈 오는 게 조금 무섭다는 생각으로 또 몇 년..

이렇게 홀로 있는 시간에 눈을 맞아 본 게 10년 만인 것 같다. 

그런데 참 좋다.



나의 보금자리로 들어오는 이 눈이 이토록 차가워서 좋다.

이 차가움이 나에게 말해준다.

내가 그동안 노력해서 만든 내 작은 보금자리가 얼마나 따뜻한 곳인지..

나 혼자가 아닌 이 공간이 얼마나 행복한 곳인지..


눈이 오면 우울했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 

창문을 열기 전까지는 딱 그러했다.

눈이 오는데, 첫눈인데, 아무것도 아무 일도 없어 우울하려던 참이었다.

단지 창문을 열었던 것뿐이었다.

아마도 그것도 작은 창문이 답답해서 그랬을 것이다.

별게 다 우울하고

별게 다 행복하다.


아마도 나의 우울은 날씨가 아니라 내 마음에 빈 공간이 만들어 낸 것이겠지.

절대 날씨 탓을 하면 안 되겠지..

햇살도, 바람도, 빗방울도, 눈보라도

그저 내 마음에 담아내면 모두 되는 것이었다.


비어있는 내 마음에 눈을 담아 이번 우울과는 또 안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