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육아하기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학령기가 되면서 아이의 감정은 더욱 섬세해졌다
오로지 엄마만 옆에 있으면 해결이 되던 몇 년 전 그때와는 또 다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서지만 또 손닿으면 닿을 그곳에 있어줘야하는 그 섬세한 육아가 요구됨이 느껴진다.
프리저브드 꽃이 딱 그러했다.
생화일때는 물도 주고 그 꽃의 특성에 맞게 잘 관리만 해주면 되지만 보존처리가 된 프리저브드 꽃은 다른 방법으로 좀 더 섬세하게 다뤄줘야만 한다.
블루밍을 하면서는 더더욱 육아와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 피어내지 않은 잎들을 피어내는 섬세한 작업을 하면서 너무 고되어 쉬운 방법을 택하기도 해보았지만 역시나 쉬운길은 없었다. 내 생각처럼 피어나지도 않고 망가뜨리기만 할 뿐이었다.
(**블루밍: 프리저브드 된 꽃은 가장 싱그러울 때 보존처리를 했기 때문에 활짝 핀 꽃을 만들려면 한장한장 직접 피워내야하는 작업을 해야한다. 그 작업이 블루밍이다.)
나는 꽃으로 내 인생의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하지만 생화를 무작정 취급하기엔 나의 어리숙함으로 시들어갈 꽃들에게 미안했고 또한 아름다움을 수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릴 수 없어 프리저브드 플라워에 관심을 가졌다.
그저 생화와 같지만 오래 가는 꽃이라고만 알고 덤볐던 나의 착각
프리저브드는 가장 싱그러운 순간에 그 모습을 정지시킨 꽃이므로 그 꽃을 피우는 과정은 과히 정성이 가득 들어가야만 했다.
한올한올 섬세한 손길로 그 한장한장 잎들을 피워내야 하는 것이 바로 프리저브드꽃이다.
그 험난한 길을 들어가던 어느날
나의 아이가, 이제는 말대꾸도 하고 슬퍼도 참을 줄 알만큼 커버린 나의 큰아이가 투둑 울음을 터트리는 날이었다.
동생과 한바탕 싸움이 났다. 나는 중재하기 위해 개입했고 더 잘못한 것 같은 큰 아이를 나무랐고 아이는 그 말들에 한마디씩 말대꾸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한숨 고르고 말했었다.
"엄마는 사랑으로 너를 대해주는데 왜 동생을 그렇게 대하는거야?" 라고 말이다.
그 사랑이라는 말에 큰 아이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투둑투둑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뿔사, 아이는 참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컸다고 울고 싶지 않아했고 화도 났지만 그것을 온전히 삼켜가며 혼자 마음속에 담아내다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오는 순간 울음이 터지고 그제서야 나에게 안겨 실컷 울게 된 것이었다.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바로바로 울어버리던 그 시절에는 내가 바로 각성할 수 있었지만 어느날부터인가 아이는 약간의 꾸중 정도는 상처받지 않고 그냥 넘긴다고 생각했다.
말대꾸도 조금씩 하고 울지도 않기에 많이 강인해졌다고 착각하고는 조금 거칠게 다루었던 날들이 지속되었었다.
물론 이제 아이는 나의 작은 화에 그렇게 일희일비 할 정도도 아니고 내 생각처럼 많이 단단해진 부분도 있었지만 지속되는 거친 손길에는 시들어버릴 수 있는 아직은 어린 아이였던 것이다.
블루밍 작업을 할 때,
어느 한 순간 힘조절이 안되면 잠깐은 버텨내지만 그 힘조절 실패가 두 번 연속 지속되면 꽃잎이 부셔져 버린다. 수십번을 해도 똑같이 그 힘조절에 언제나 신경써야 한다.
참으로 웃기게도 이렇게 힘조절을 언제나 하고 작업해야 하는 것처럼 한 아이를 길러내는 것도 그 힘조절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걸 세삼 깨닫게 된 날이었다.
힘조절이 안된 거친 손길을 계속해서 견뎌내는 꽃은 없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거친 말과 행동을 감당해 내는 아이도 없다.
내가 보존된 꽃을 온전히 피워내기 위해 섬세하게 다뤄줘야 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딱 그만큼, 섬세한 손길로 돌봐줘야 한다는 것을 프리저브드 꽃을 통해 다시금 배우게 되었다.
프리저브드 육아를 한다면 아름답게 피워낸 그 잎이 영원한 것처럼 우리 아이들 마음에도 활짝 핀 마음이 영원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