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육아하기
플로리스트 1급 자격증을 손쉽게 따고 무작정 꽃시장으로 달려갔었다.
그때는 민간자격증이 그저 수료증 같은 의미라는 것을 모르고 진짜 자격증을 땄다며 당장 꽃집이라도 차릴 것처럼 의기양양한 마음이었다.
꽃은 사람의 마음을 마구 뒤흔든다. 그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에 취해 오랜 세월 꽃을 만져온 플로리스트들도 꽃에 홀려 계획에 없던 것들을 마구 사입할 때도 있다 하였다.
나 또한 그랬다. 그저 구경만 하러 간 그곳에서 나는 꽃에 매료되어 버렸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듯 그 꽃들을 집으로 데려와서는 그 꽃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를 가장 강력하게 홀려버린 안개꽃과 튤립은 나의 거친 손길을 이겨내지 못하고는 이상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배운 컨디셔닝 과정이 문제였을까, 온도가 문제였을까? 물론 모든 문제가 뒤섞였겠지만 꽃에서 나는 꾸린 악취는 지금 생각해도 참을 수 없는 냄새였다.
그럼에도 그 아름다움을 버릴 수 없어 3일을 더 버티고 있다가 급기야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식구들의 말에 나의 꽃들을 쓰레기통으로 버려야만 했다.
참담한 나의 첫 꽃경험이다.
나중에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나서야 알았지만 생화는 사입해 오는 즉시 다듬어 깨끗한 물을 줘야하고 물통도 세제로 씻어가며 매일 물을 갈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박테리아 번식을 막을 수 있고 하루라도 더 오래 꽃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나의 꽃에 박테리아가 번식했고 그래서 일주일도 안된 꽃이 썪어 버렸었던 것이다. 자신만만하게 꽃의 세상에 뛰어들자마자 맛본 첫번째 시련이었던 것이다.
아기를 낳을 때에도 그랬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게도 힘들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새벽에 깨서 잠시 우유를 주고 재우는 것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거만한 마음으로 아이를 낳았고 (물론 제왕절개를 했기에 그때까지도 순조로웠다.)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첫날밤부터 무너졌었다.
내가 생각한 우유를 먹이고 트름만 시켜서 재우는 그런 순조로운 밤이 아니었다.
아기는 우유를 먹고 잠이 들라했지만 트름을 위한 등두드림에 다시 깨어났고 그 두드림 속에 잠이 들때 쯤 응가를 했다. 응가를 치우는 사이 아이는 점점 똘망똘망 눈을 떴고 그런 아이를 재우려고 흔들고 토닥이고를 1시간을 넘게 해야만 했다.
지쳐갈 때쯤 아기도 지쳐갔는지 잠을 잘까 했지만 다시 배가 고픈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유를 먹이면서 끝없는 반복이 시작되었다. 나의 아기가 진짜 잠에 든 것은 이미 해가 뜰 때였다. 아침 출근하는 산후도우미 아주머니에게 효도라도 하듯이 아기는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이미 가출해 버린 정신과 지칠때로 지쳐버린 육체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냈다.
별거 아니라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자만하다 그렇게 참담하게 나의 육아의 세상은 시작 되었었다.
엄마가 되는 첫 한발자국과 플로리스트가 되기 위한 첫발자국이 이토록 닮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아기의 웃는 얼굴은 사람의 마음을 녹여냈었다.
그토록 밤새 고생시키는 이 존재의 1초 웃음만으로도 부모인 우리 모두는 다시금 웃으며 그 고통속으로 홀린듯 들어간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며 육아의 세상은 시작된다.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이 또 다시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듯이 나에게 꽃은 그러했다. 그 악취를 맡고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서는 내가 능숙한 플로리스트가 되기 전까지는 프리저브드나 조화처럼 죽지 않는 꽃만을 취급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새 꽃의 천국에 들어서 또 한다발의 생화를 사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아기의 웃음같은 생화에 빠져 사입한 후 이번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두 번째 튤립은 조금 오래 지켜냈다. 구린내도 나지 않았다. 집으로 데려오자마자 시간을 앞다퉈 컨디셔닝을 했고 매일 물을 갈아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오래오래 한달은 이 꽃을 감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욕심일 뿐,,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과 같았다.
제대로 관리해 준 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그 싱그러움을 잃어갔고 조금씩 고개를 숙여갔다.
파릇한 꽃잎은 점점 시들시들 힘을 잃어갔고 색깔조차 탁한 갈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런 꽃에 물을 갈아주다가 정말로 계속해서 물을 주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늙은 꽃에 물을 주니 그 꽃은 점점 추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물을 비워내고 유리병에서 꺼내어 편안하게 눕혀 주었다. 그러니 튤립은 더 이상 이상 추해지지 않고 또 다른 매력을 뽐내며 자연스럽게 말라갔다.
집에 온 순간부터 한 순간도 꽃병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다시 시원한 곳으로 돌려보냈고 하루에도 두 번씩 물을 갈아주고 뿌려주며 그렇게 지켜보았다.
비록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아기가 집에 돌아와 자라는 동안 그렇게 섬세한 손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의 아이는 조용히 자라고 있었고 그렇게 희미하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캐치해 내야만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었다.
잠시만 한눈 팔고 소홀히 해도 조금은 시들어버리는 우리 아이들이기에, 우리는 온통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순수함이라는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성숙해졌을 땐, 계속해서 물을 갈아주는 것보다 편안한 볕에서 조용히 내비두는 것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꽃으로 말라가는 것처럼 ,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는 자꾸만 물을 갈아주며 기대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볕에 두고 지켜봐 주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진 채 성숙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 아이의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면 한 송이의 생화와 다름 없어 보인다.
아기처럼 어렵고 어려운 생화를 보며 또 다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키워야 할 지, 또 시간이 지나 자라난 아이들에게 먼 훗날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나는 오늘도 꽃시장에 간다.
그리고 최고로 그 꽃의 자태를 뽐낼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으로 돌본 뒤 가장 아름답게 져버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물론 이 마음 그대로, 나의 아이에게도 자신만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피어낼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으로 키워낸 후 가장 나다운 모습대로 성숙할 수 있도록 지켜봐줄 것이다.
매일 꽃을 보며 꽃처럼 육아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겠지만 그 과정 끝에 아름다운 한다발의 꽃이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