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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Sep 03. 2023

20살에 나는 왜 그랬을까?

내 인생은 언제나 '응답하라'

떠올리면 사무치게 그리운 시절이 있다.

아니!!  떠올리면 사무치게 후회스러워 아쉽고 그래서 자꾸만 되뇌는 시절이 있다.

아줌마가 된 지금, 로맨스는 없고 진짜 현실만 남아 살아가는 나에게 추억을 되내이는 시간이 오면 나는 가끔은 내 과거로 절절한 로맨스 영화를 펼치기도 하고 후회로 가득한 절망의 영화를 펼치기도 한다.


특히나 나의 20살, 아줌마가 된 지금 바라보는 나의 20살은 로맨스라기 보다는 후회로 가득차 있기도 하다. 그렇게 너무나 찬란했던 그 시절을 스스로 망쳐버리고는 어느 순간만 되면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테이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가슴 아파서, 목이 메어서 안간힘을 써봐도~ 피해지지도 물러지지도 않는 이별인가 봐..

나의 가슴 아픈 시절에 가슴 아픈 명곡이 나와 언제나 지워지지도 않게 만들어주는 노래


그렇다. 아마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후회되는 시절이 있다면 아마도 20살, 어른이 되던 그 해일 것이다.

2004년, 공포학번이라 불리는 04학번이었던 나는 인생의 사춘기가 아마도 그때 왔던 것 같다.

대학도 마음에 들지 않고 나의 과도 마음에 들지 않고 게다가 같은 과가 된 친구들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삐뚤어진 사고방식, 삐딱해진 시선, 어쩌면 너무 딱딱해서 보기 안쓰러울 수도 있었던 나의 20살,

나를 자꾸만 그 시절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건 바로 그 시절 나를 지배했던 노래, 테이의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계속해서 20살의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




입학하던 날 엄청난 폭설이 내려 입학식 참석도 하지 못했었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망쳐 놀 대학시절의 복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티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나의 삐딱함은 더욱 가속도가 붙어 나갔다.

나 역시 애송이이면서 같은 과 아이들이 어른인 척하는 애송이로 보였다. 이미 오티에서 하나가 되어 이 과를 지배하겠노라며 떵떵거리던 아이들이 눈엣가시 같았고 재미없는 개강파티, 인사를 요구하는 2학년 선배들로 이어지는 피곤함에 나는 아웃사이더 중에서도 아웃사이더를 자초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리웠다. 아마도 익숙함을 그리워하며 어색한 나의 대학을 그리도 거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입학 후 한 달이 지날 때쯤 동아리라도 들어야겠다며 동아리방을 기웃기웃거려보았다. 검도동아리가 참 멋져 보이고 마음에 끌렸으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구애활동을 한 영화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로 내 대학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하는 원치 않는 또 하나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내가 들어갔던 학부는 워낙 여자들이 많고 학부제하의 너무 많은 인원 때문에 우리 학부 여자들이 동아리로 모두 진출해 있었다. 여자세상을 떠나 남녀비율 좋은 곳으로 떠나온 아이들은 같은 학부 아이들을 만나면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이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보이기도 했다. 나도 이제 내 남은 대학생활은 동아리 하나라고 생각했고 그 아이들 때문에 또 도망쳐 나올 수는 없었다.


겉으론 웃지만 서로 신경전을 해가며 그리 불편하게도 동아리 생활을 이어갔다. 역시 영화는 그냥 수단일 뿐, 마음에 드는 여자남자를 찾아대기 바쁘고 선배들조차도 신입생 중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하는 그런 평범한 그리고 정말 풋풋한 대학새내기들이었다.

그런데 그 풋내 나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1인이 있었으니.. 바로 삐딱이 '나'였다.

시트콤에서 보던 그런 동아리 생활을 기대했건만 정말 모든 것이 꼴 사나워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순수하고 쾌활했던 그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후회가 사무치게 든다.



힘들게 살아와서였을까? 아니면 태생이 생각이 많게 태어나서였을까?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던 걸까?

왜 그렇게 어둡고 우울했었는지, 가장 즐겁고 가장 슬프고 가장 멋지고 가장 찌질하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가슴 뛰었어야 할 그 시절에 나는 참... 아쉽게도 그렇지를 못했다.

원래 테이의 노래가 슬픈 노래지만 나에게 이 노래는 정말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날을 떠올리게 하며 가사대로 가슴이 아파지게 만들어 버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2004년으로 돌아가 가장 찌질해도 좋으니 정말 멋지게 대학생활을 해보는 상상뿐이다.

초능력이 생긴다면, 시간을 돌이켜갈 수 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20살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애송이들에게 '안녕?'이라고 활짝 웃으며 인사할 것이다.

오티도 가고 엠티도 가고 개강파티도 모두 가서 집에 돌아올 수 있을 만큼의 정신만 남기고 열심히 짠하고 놀아볼 것이다.

찌질이들이라고 생각했던 그 아이들과 함께, 마음에 들지 않는 소개팅 미팅도 모두 나가볼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이 나왔는지 카페에 앉아 수다 떨고 또다시 술을 먹고,, 선배들에게 밥 사달라는 콧소리도 한번 내볼 것이다.

그러다 취업전선에 부딪힐 때 함께 고통을 토로하고 면접을 준비하는 그런 힘든 시기도 함께 해 볼 것이다.

모든 것이 그 정 평범 그 자체인 것을 나는 그 평범함을 하지 못하고 하지 않아 지금도 이리 마음이 아프다.



사실, 그런 삐딱한 나에게도 기회는 몇 번이나 찾아왔었다.

아웃사이더였지만 그럼에도 말을 걸어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가 미팅도 한번 시켜줬었고 예상치 않았던 멋진 공대오빠가 대시를 하기도 했었다.

그때 미팅에서 남자대여자를 떠나, 서로 친구로 남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한두 번 놀고 함께 놀고 놀러도 가면 내가 그리는 그 평범하고 즐거운 대학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대시했던 그 오빠의 고백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아마 핵인싸였던 그 오빠와 만났더라면 정말로 나의 대학생활이 180도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인생 가장 찬란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오빠는 정말로 우리 학교 유명 인기남이었다. 나는 그 오빠의 머리카락이 마음에 들지 않아 걷어차버렸었다. 아니 더 솔직히는 그냥 눈에 띄게 고백하는 모든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꽃다발을 들고 아주 큰 소리로 인사하며 다가오는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목받는 것이 창피했었다. 가장 후회한 일이지만 아마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살며시 들기도 할 정도로 나는 그런 식의 주목을 정말로 싫어했었다.

그래서 나의 상상 속의 그날은.. 수줍지만 조용히 도망 나와 솔직히 말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주목은 싫고...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해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경멸하는 눈빛으로 피하는 나의 모습은 아마 정나미가 뚝 떨어질 만큼 끔찍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웃긴 건.. 그 오빠가 테이와 똑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그리 잘했다는 뒤늦게 들은 이야기이다. 정말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아마 첫사랑도 아닌데 이렇게 그리워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후회스럽기만 하다.


자, 이제 노래가 끝나간다.

나의 상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나의 20살의 모든 행동의 후회 중 가장 top인 내 대학시절 첫 고백을 받아들이고 cc를 해보는 것, 정말 화려하고 가장 눈에 띄는 사랑을 해보고 가장 거지 같은 이별을 할지언정 그런 진한 추억하나를 내 20살에 만들어 놓고 나는 다시 내 현실로 온다.


그 시절 그런 선택들이 모여 지금 내 옆에 천사 같은 나의 딸 2명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로 후회는 상상으로 지워버리고 음악과 함께 상상극은 끝이 났다.

20살에 난 왜 그랬을까??

아마도 지금 테이의 음악과 함께 상상의 소설을 쓰려고 그랬나 보다..

아줌마가 된 지금 내가 쓰는 소설엔 다양한 주제가 가득하려고 그랬다고 생각하며 추억의 문을 닫고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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