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Oct 16. 2023

아줌마가 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클레임 못하는 사자머리 엄마의 고충

어릴 적 나는 다른 사람에게 쓴소리 한 번을 못했다. 

어느 정도 감당할 정도면 그냥 참고 넘기고.. 감당을 못하는 상처를 줬다면 조용히 멀리 하기만을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야박하게 살지 말자.'라고 합리화시키면서도 내심 할 말 딱딱 잘하고 야무지게 자기 권리를 찾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릴 적 내 눈에는 그 말을 잘하고 따지기도 최고 잘하는 사람이 아줌마였다. 아마도 그 시절 내가 아줌마라고 느낀 사람들이 현재 내 나이보다 어렸던 거 같다. 

그래서 20대를 살아가면서도 나도 아마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아줌마가 되면 그럴 수 있다고, 모두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쑥스러움이나 소심한 성격은 줄어들고 당차게 되는 줄만 알았다. 

나도 그때가 되면 부당함에 큰소리 내고 내 권리를 요구하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사회생활도 해볼만큼 해봤고 세상풍파 다 겪어봤는데 나는 여전히 그러지를 못한다. 


나의 이 성격은 특히 미용실에서 머리를 망칠 때면 집에서 혼자 가슴앓이를 하게 한다. 

엊그제 2년 동안 기다린 파마를 드디어 하는 날이었다. 

왜 2년이냐고? 

2년 전 당골로 다니던 미용실에서 매직을 잘못했었다. 머리 뿌리 부분을 여치다리처럼 해놓은 것...

그 사람에게 클레임은커녕 말 한마디 못하고 혼자 끙끙앓다 잘한다는 다른 미용실에 가서 또다시 파마를 했었다. 그렇게 한 달 사이 두 번의 파마를 하니 머리카락이 견뎌내지를 못하고 푸석이 사자가 되어갔다. 그 뒤로 그 상한 머리를 잘라내고 기르고 잘라내고의 반복이었다.

새치가 있어 틈틈이 염색은 해야 했기에 빠른 속도로 머릿결 회복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이 둘 키우며 앉을 틈도 없던 내가 트리트먼트고 머고 샴푸로 머리만 후다닥 감고 나왔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조금 회복한 머리에 1년이 지날 때쯤 차분한 머리를 기대하며 매직을 했었다.

그런데... 머릿결이 안 좋다는 이유로 약을 약하게 쓴다며 매직을 했는데 며칠 만에 사자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일 년을 조용히 길러가며 잘라가며 이날만을 기다려 온 것이다.


두근거렸다.

다시는 망치고 싶지 않았다. 2년간의 사자머리의 고통...

그래서 항상 알아서 해주고 믿고 맡겼던 당골 미용실임에도 내 딴에는 요구사항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엔 여치다리는 없었으나 완벽히 내가 가장 꺼려하는 초코송이( 뿌리는 딱 붙고 아랫부분은 붕떠버리는) 머리가 되었다. 미용실에서 나올 때는 집에 가서 머리를 감고 내가 다시 해보면 되겠지란 희망을 가지고 그저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란 말만 남기고 왔었다. 

다음날까지 초코송이 머리를 모자로 눌러쓰며 드디어 하루가 지나 머리를 감았다. 

손으로 돌돌돌 정성껏 말리고 뿌리도 세워가며 신경을 써서 다듬었다. 

그런데 나의 희망은 희망이었을 뿐...

더욱 푸석해진 초코송이만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나마 깔끔한 초코송이면 다행일까... 여전히 사자는 존재했다.


한 시간을 아이도 안 돌보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만지고 눌러봤다. 

한숨은 늘어가고... 스트레스 수치는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카톡을 하나 보냈다. 

"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이 생기잖아~ ㅋㅋ 그렇다면 내 이 머리희생은 감당하겠어.... 이렇게 생각하는데 짜증이 자꾸 난다. ㅠㅠ"

그저 주절주절 내 마음을 추스르려고 보낸 카톡이었다. 

공감이나 위로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당골이었던 미용실은 조용히 발을 떼야하나 생각만 했다. 선수금을 넣어 두었는데 어쩌나란 생각과 함께...


바로 따져들지 못하는 내 성격이 나를 더 가슴 문들어지게 만들었다. 

남편의 전화가 왔다. 

나를 잘 아는 남편은 클레임 아니고 그냥 가서 잘 말하라고 했다. 혼자 스트레스받지 말고..

문자로 해도 좋다고 그건 말해도 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남편도 함께 다니는 미용실이기에 그 미용사를 알고 말하는 것이니 믿어 보았다. 


문자를 했다. 

머리를 망치고 처음으로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를 하는 순간이었다. 

내 머리 사진까지 찍어 보내주고 해결책이 있다면 먼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남편의 말 그대로 클레임 아니고 믿고 가는 미용실이니 말씀드린다는 구차한 말까지 곁들였다.

미용실에서는 다시 나와 상태를 보겠다고 약속 시간을 잡아주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그 순간에도 나는 따져 들기보다 이 앞을 지나다녀야 하는데 껄끄러워지면 어떻게 하나란 생각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조용히 피해 다닐 생각만 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오랫동안 끊었던 술을 찾았다. 

나이 40을 바라보고 아직도 머리를 이 모양을 한 것에 대해 말 한마디를 시원하게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아줌마가 되면 다 되는 줄 알았던 나의 어릴 적 생각이 났다. 

클레임을 잘 걸지 않는 내가 가끔은 사람도 좋아 보이고 고상해 보이기도 한다며 나름 그 장점에 뿌듯해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처럼 멍청한 사람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내 성격이 참 밉기도 하다. 

세상 모든 사소한 것들을 혼자서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나인데도 이번은 넘어가가지질 않았다. 

" 엄마, 더 사자가 된 거 같아~~!" 

라는 아이의 말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ㅎㅎㅎㅎ




내가 머리를 항상 망치는 것은 아마도 내 탓이 크기도 한 것 같다. 깐깐하게 굴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저 살짝 미소 지으며 나왔던 나의 행동 때문에..

이제는 다시 10년 뒤를 생각해 본다. 

그때도 나는 클레임도 걸지 못하고 혼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일까?

정말로... 할머니 되기 직전의 아줌마가 되면 나도 다 가능할까?


참으로 우습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참으로 나를 슬프게 한다. 

오죽하면 한국 사람은 지랄해야 잘해준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나처럼 조용히 있으면 더 잘해주는 세상이 오려나?

아줌마가 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모두들 알고 있는 아줌마라는 그 이미지는 완전히 반만 맞고 반은 잘못되었다. 

내가 아줌마가 되어보고 나서야 그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아줌마는 아줌마일뿐...나는 그냥 아줌마가 된 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아줌마가 드세지지 않도록 바라는 것이 있다. 

바로...속담이 뒤집히는 세상 ~!


울지 않아야 떡 하나 더 주는 세상!!!


아줌마가 목소리가 커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을 조용히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