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 같은 너에게>
대학 가고 취업하면 끝인 줄 알았지
결혼하고 안정되면 끝인 줄 알았지
우리들의 진짜 고뇌는 가장 소중한 보물과 시작된다.
매일 힘겹게 나라는 사람의 감정들과 씨름하며 고뇌하는 모든 엄마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너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고 싶지 않다.
나의 살과 같은 너에게 그만 미안해하고 싶다.
그러고 싶다..
아침부터 유난히 기분이 안 좋은 날, 그때를 알기라도 하는 듯, 엄마라는 존재를 테스트라도 하는 듯, 때마침 이상하게도 짜증을 부리려고 하는 너였다. 바로 나의 살과 같은 딸아이이다.
7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을 같이 하며 나의 모든 사랑과 나의 모든 어두운 감정까지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나의 살과 같은 자식이다..
나는 또 터져버렸다. 속사포처럼 너라는 내 아이에게 퍼부었다. 마치 너의 짜증에 내가 화난 것처럼 나의 감정의 원인을 아이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 잠시 한 발자국 멀리서 내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가까스로 나를 멈춰 세우고는 육아서적에서 시키는 대로, 오은영 박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가슴속 불길을 멈춰 세우려 했다.
하지만 반첨만 다스려진 내 마음은 계속된 아이의 작은 말썽에 정말 터져버렸고 마치 ‘빵’하고 터져야 가라앉는 풍선처럼 발톱을 세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생채기를 내고 나서야 나는 가라앉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하루 20시간을 혼자 돌보며 나의 모든 것을 주어서 나에게 남아있는 에너지가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나라는 엄마의 그릇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어 그러는 걸까?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죄책감과 엄마라는 회의감에 젖어 그렇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깜깜한 눈앞의 어둠을 치우고, 내 까만 마음을 치우고 그 터널을 다 건너와야만 그제야 나의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새하얀 눈밭에 나의 검은 재가 뿌려진 것 같은 그 마음을 말이다.
난 아직도 그런 것이다. 온 마음이 아이에게 향해 있어도 내 마음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내 마음을 다스려야만 아이를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7살에게 사과까지 해야 하냐고 누군가 말했었지..
난 2살, 아니, 할 수 있다면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사과는 할 수 있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엄마의 감정덩어리를 혼자 받고 눈물을 흘렸던 우리 아이에게 오늘도 나는 미안해하고 반성한다.
나는 네 덕분에 이렇게 지금도 자라나고 있는데, 매번 이런 날이면 눈물을 흘리며 일기를 쓴다. 행복한 날들만을 적어내고 싶었던 나의 육아일기장이 매번 죄를 지을 때에 써 내려가는 죄수의 일기장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언제나 석방하는 그날을 꿈꾸며 나의 잘못을 적어 내려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음에 보석을 안겨준, 나에게 최고의 인생을 맛보게 해 준 그렇게 고귀한 너를 향해 글을 쓰면서 눈물이 안나는 날이 올까?
이제 그만 미안해하고 싶다.. 그런 눈물은 그만 흘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