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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Aug 10. 2023

벌써 20년, 음악은 추억을 싣고 2000년대로

내 인생은 언제나 응답하라.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나의 일을 하고 다시 또 아이를 데리러 가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더욱 정신이 없는 아줌마의 하루. 

그런 나에게 추억을 더듬어볼 시간이나 있을까? 여유로운 커피 한잔이 그리운 어떤 하루에 갑자기 가슴을 파고 드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가 있다. 

나의 추억여행은 그렇게 음악과 시작되었다.

어쩔 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음악과 함께 과거를 넘나 든다.

나에게 음악은 타임머신이나 다름없는 것, 오늘도 그 시절 노래를 들으면 

그날이 생생하게 영화처럼 흘러간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에게 내 진짜 인생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영화 같았던 장면들이 가득하다. 

아줌마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나는 추억여행을 떠난다. 



현란했던 2000년 초반 나의 학창 시절, 창피하지만 화려했고 또 그래서 후회로 가득한 그날들로

 매일 돌아가본다. 






1985년에 태어나 너무나 조용하고 평범하게 자라왔던 나에게 생생한 추억의 영화가 시작된 건 아마도 1998년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그렇게나 선풍적으로 유행하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세대는 참 적은 것 같다.

아마도 83년생들부터 붐이 일어나 85년생들이 그 정점을 찍고 우리들의 때양아치 시절은 하향선을 그려간 것이 아닐까 싶다.


1998년 청주시, 한 여자중학교를 입학했다. 단발머리에 통이 넓은 교복, 언니들이 메던 이스트백을 메고 학교에 갔던 나..

여전히 소심하고 얌전했지만 언니들이 선택해 준 잇템들 때문에 중2, 3학년 언니들의 눈에 들고야 말았다.

단발머리는 깻잎머리로 묶고 루이뷔통 복조리 가방을 하나씩 메고 다니는 언니들.. 순수했던 중1들은 하나둘 그 언니들처럼 변해가기도 했다. 아직은 순박했던지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것이 유행이라는 흐름을 탄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언니들은 소수였다.


1999년 중학교 2학년. 대전광역시로 전학을 갔다.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좀 더 학구적인 느낌이었다.

깻잎머리도 좀 더 없어 보이고..

그렇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넘쳐나는 유행템이 파도처럼 몰려와 뒤돌아보니 모두 공장에서 찍어낸 듯이 똑같이 하고 다녔다.

운동화대신 헤드&휠라 슬리퍼, 곰표 색깔양말, 바지든 치마든 내 몸을 여실히 보여주도록 줄여낸 교복, 거북이 등짝처럼 바짝 올려 맨 브랜드 책가방까지..

머리는 깻잎머리부터 단발머리, 심하면 레게를 넣어 뽕넣고 묶던 아이들.. 단발로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머리들을 장착했던 그 아이들, 그 어떤 것도 잊을 수가 없다.


 

2000년 중학교 3학년, 봄소풍

사복을 입고 소풍을 갔던 그 당시.. 누가 누가 더 어른처럼 꾸몄나 경쟁하듯이 입고 나타났다.

달라붙는 부츠컷 청바지에 하이힐, 또는 정장풀세트, 좀 더 나아가 화장까지 한 아이들

사복패션 또한 지방 양아치들은 다 그러했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구두 신고 다니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진다. 누가 학생이고 누가 선생인지 모르겠을 정도로 심했던 사복패션-

그런 양아치들이 판치는 중학교 시절을 지나 다행히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많은 아이들이 걸러지고 정상적인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유행은, 이제 시작이다.


2001년 고등학생이 되었다. 소녀를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는 그 나이.

베이비복스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시절, 그런 여자의 심정을 표현한 노래가 있었다. 바로' Change'


~~ 언제부터 습관처럼 난 거울 보는 일이 많았지
변해 가는 내 모습 정말 어른이 되는 걸까

낯설게만 느껴졌었던 남자들의 시선이 좋아

누구든지 한눈에 내게 반하게 하고 싶어~~



이해가 안 가던 가사가 내가 고등학생이 돼 보니 알게 되었다. 모두가 조금씩 외모에 신경을 썼던 우리들,

아직은 양아치시절 패션과 새로운 고등학생의 패션이 조금 겹쳐지던 시절..


그때는 나름 인문계에 맞춰 유행하던 스타일이 있었다. (끝도 없는 유행.)

단발머리에 볼륨파마를 했다.

수제화라는 갈색 신발을 신고 아마도 모두 짝퉁이겠지만 프라다가 박힌 길게 늘어지는 가방.

그 머리에 수제화와 프라다 가방이면 우리들의 공장표 유행패션 마스터였다.



이제 우리들 세대를 완벽히 장식할 것이 나온다. 바로 싸이월드이다.


싸이월드는 우리들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혁신 같은 것이었다.

지금 인스타 안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아마도 그 시절, 85년생 중에 싸이월드 안 했던 이가 있을까?

그 인기는 정말로 대단했다. 지금의 카톡, 인스타를 모두 합쳐놨던 싸. 이. 월. 드.

우리 사회에 관종이라는 종자를 처음 배출시키기 시작한 싸이월드,

그리고 양대산맥을 이루었던 sayclub은 그 시절 우리들에겐 남고와 여고를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였다.





토요일까지 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 토요일 이른 하교를 하고 삼삼오오 모여 그 주에 단체채팅으로 잡아놓은 만남을 가지러 모두 다 은행동을 나갔다. 다양한 색깔의 교복의 무리들이 수많은 인파를 이루고 있던 은행동,

이안경이라는 만남의 장소에서 호기심반 설렘반으로 채팅상대를 찾아 만났다.

채팅으로 만난 삼삼오오 무리의 여고생 남고생들의 코스는 사실 정해져 있었다. 밥 먹고 노래방.

노래방이 가장 많았던 시절도 아마 그때가 아닌가 싶다.

2000년 초반 우리들이 함께 몰려다닐 수 있었던 것도 아마 노래방이나 콜라텍 같은 그런 청소년입장 유흥시설이 성행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를 이 시절로 매일매일 끌고 오는 것도, 수많은 명곡이 그 당시 정말 많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브라운아이즈, 성시경을 대표로 꼽고 싶다.

아! 박력분야의 소찬휘와 마야도 생각이 난다.

나는 브라운아이즈 노래만 나오면 항상 이 시절의 나에게 돌아온다. 친구로 힘들었고 공부로 힘들었고 이성문제로 힘들었던 그날의 나에게 언제나 옆에 있어준 음악들..


'벌써 일 년'.... 흘러나올 때마다 나를 언제나 여고생의 시절 나의 교실로 데려다준다.

'내게 오는 길'.... 언제나 나의 첫사랑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날로 데려다준다.

그렇게 노래마다 그 숨결마다 나의 청춘이 녹아내려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고 하루에 한 번씩 그때의 나에게 응답하라고 문을 두들긴다.


내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 아직까지 생생하게 흘러가는 이 필름을 완벽히 정지시키고픈 욕심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는 장면장면들을 매일매일 음악을 타고 돌아가 기록한다면 어느 날 나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그날에도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 친구들이 나의 생생한 기록들로 조금이나마 추억 속에서 웃음 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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