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 되기 프로젝트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풀리고
하루의 고단함이 풀리고
혼자 고군분투했던 하루를 달래주었던 유일한 친구
바로 술이다.
내 기분을 풀어준다고 육퇴 후 의지했던 술이었다.
엄마도 기분전환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잘못된 선택을 했었다. 그 당시에는 잘못인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하루종일 아이와 집에서 씨름하는 내가 유일하게 의지한 것이었고 그 시간만큼 달콤한 시간도 없었기에..
하지만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짜증스럽고 지치고 힘든 것으로만 만들었던 것 또한 술이었다.
한치의 미래도 보지 못하고 당장의 달콤함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육아하며 술을 마셔본 이라면 알 것이다.
나의 피곤함은 밤새 통잠자지 않는 아기 때문이라고 당연시 여겼다.
그렇기에 나의 쉬는 시간인 아이의 낮잠시간에 집착하게 되었고 오전 내내 낮잠시간만을 기다렸다. 낮잠을 조금이라도 자지 않으려 하거나 자더라도 조금 자고 일어난 날이면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그 짜증의 감정을 아이에게 숨기래야 숨길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웠다.
피곤했고 나만의 시간이 없었으며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나서는 그 죄책감에 괴로움은 배로 늘어났다.
그렇게 하루의 끝엔 여러 가지 감정의 누적과 더불어 육체피로로 스트레스 덩어리가 된 나였다. 그런 나를 달래주는 건 또 술..
그리고 그 악순환의 무한반복이었다.
어느 날, 아이에게 부린 짜증의 죄책감이 나를 뒤덮어 버린 날 정신을 차리고 술을 먹지 않았다. 아니, 사실 나의 짜증이 아이의 이상행동을 만들었고 그 행동에 대한 육아지침서를 검색하다 술 마실 시간을 놓쳐버렸다. 두 시간 남짓 검색을 하다 보니 뒤덮이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완전히 다른 기분을 느꼈다.
개운해진 몸은 아이의 보챔을 받아줄 여력이 생겼고 잘 놀아주는 엄마 덕에 피곤해진 아이는 더 편안하게 낮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 낮잠시간에 나는 다른 자질구리한 일들을 모두 마치고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눈을 떠보니 환한 얼굴로 맞아주는 엄마를 본 아이는 기분 좋게 두 번째 하루를 시작했고 그것은 열정적으로 놀고 잘 먹고 잘 자는 선순환을 만들었다.
하루의 끝이 그렇게 뿌듯하고 덜 피곤한을 느낀 나는 가슴깊이 깨달았다.
술이 나를 달래준 것은 단 1시간뿐,
술이 결국은 내 육체를 좀먹고, 그 육체는 내 마음을 좀 먹고 그 마음은 결국 아이가 감당해야 할 짐덩어리였음을 말이다.
그 이후로 술에 의지하는 날들을 줄여갔다. 다시 또 술의 유혹이 시작되었지만 안 먹었던 날의 그 달콤한 하루만을 떠올리며 참아냈다. 그렇게 한두 번의 인내가 나를 살리고 아이를 살렸다.
나는 다른 것에 육아의 고단함을 의지하며 풀어내려 했다. 나를 기분 좋게 해 주기보단 나를 단단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으로 말이다. (사실 나에게 플러스적인 것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마이너스적인 행동만을 삼가려고 노력했다. )
그렇게 술의 중독에서 빠져나와 육아의 고통에서 조금은 벗어났고 몇 년이 흘렀다.
가끔은 가족과 또는 남편과 술자리를 갖기도 하지만 맥주 한 캔을 넘어서지 않으려고 한다.
술을 멀리한 뒤로 점점 더 술에 취약해졌고 맥주 한 캔은 음료수처럼 마시던 내가 그 정도로도 숙취가 올라온다.
이제는 아이가 자라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엄마를 깨우며 징징거리는 나이를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자고 있는 엄마보다는 웃으며 안아주는 엄마를 좋아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가 아이의 하루와 나의 하루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 놓았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나와 아이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무엇인가를 플러스적으로 해야 한다기보다 아주 기본적인 엄마의 역할을 방해하는 것들부터 버리는 마이너스적인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인 사람이 되는 길이나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 참으로 똑같은 것 같다.
나를 부풀리고 서로에게 의무감을 지어주고 기대감을 갖는 것보다는 서로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워가며 그저 내 자리에 충실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명절휴일에 오랜만에 긴 연휴라고 마음 편히 맥주를 좀 마시고 잤다. 그러고는 추석 당일 아침에 술에서 깨어나지 못해 며느리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오후까지도 아이들에게 황금 같은 휴일에 자는 엄마의 모습만 보여주었다. 버려진 시간을 한탄하는 나를 보고 몇 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술 마시며 하루하루를 곱씹으며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함을 한탄하는 그런 바보 같은 날들을 보냈던 나,
한바탕의 술이 바보 같은 엄마로 만드는 것은 아이의
나이를 불문한다. 물론 엄마도 사람인데 하루 정도는 좀 망가지면 어떠냐고 싶다가도 이런 작은 하루가 조금씩 모여 그 기분 좋음을 야금야금 찾아대게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반성하며 되내인다.
바보 같은 엄마가 되려면 술로 모든 것을
달래라. 공든 탑은 무조건 술로 무너지리..
아줌마 인생이라는 것이 참으로 즐거움만을 추구할 수도 없는 삶이라는 것이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아줌마이기 전에 한 여자이고 그 여자가 엄마가 되었기에 나만을 생각하는 삶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아줌마의 현실은 아이가 있어 가슴 벅차고 아이가 있어 참 슬프다.
사소한 술 한잔에 다른 이의 인생이 걸려있다는 엄청난 부담감을 담아 마시는 나는 강인한 아줌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