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의 잔소리 덕분에 남편의 잔소리가 곱다

극한으로 내몰렸던 경험의 장점

by 김파랑

“안녕하세요. “

아침인사를 한다. 자리에 가방을 놓고 앉으려던 찰나

“파랑아~ 아니 파랑씨, 어제 말한 거 어느 정도 됐니? 일단 된 만큼 가져와봐~! “

엉덩이 살짝 붙이지도 못하고 서랍을 열어 허둥지둥 그것을 찾는다.

그리고 팀장 옆에서 15분가량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내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이것이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출근길에 할 일 목록을 정리하고 생각해 두지만 소용이 없다. 내가 감히 가늠하지도 못하는 목록이 매일 아침 시작부터 쏟아져 내린다.

그뿐이면 다행이랴?

그 목록들의 중간중간 진행상황부터 순서까지, 심지어 업무전화 한 통화도 모두 간섭한다. 점심시간에도 끝나지 않는다. 베테랑 주부임을 자부하는 팀장의 잔소리는 야채 권하는 엄마의 잔소리로 둔갑되어 또 시작된다.


조용히 밥 한 번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어느 날은 있지도 않은 약속이 있다며 몰래 식당에서 혼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의 점심은 최고의 만찬이 되었다.

거짓말도 잘 못하는 내가 전날 저녁부터 거짓말할 각오를 하고 가야만 완벽히 점심을 혼자 먹을 수 있다. 중대한 일도 아닌 이것에 하고 싶지 않은 거짓말까지 하는 나 자신을 보고는 인생이 참 슬펐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치사하고 간사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이 40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잔소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잔소리가 심한 엄마 밑에서 자라왔다. 나이가 어릴 때는 그저 순응하면서 살아오다 성인이 되어서도 한집에 살다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

"얼른 밥 먹어라~, 밥 한 숟갈을 왜 남기니, 밥그릇에 물을 꼭 부어놔야 해, 이거 먹어봐 몸에 좋다니까 그냥 꾹 참고 먹어~!, 설거지할 때 물 안 튀게... 빨랫거리는 이렇게.. 신발은 이렇게..."

집안에 있는 내내 끝도 없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잔소리는 나의 건강을 염려한 것에서 시작된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의도를 아는 것과 잔소리를 듣는 것은 별개의 일인 것 같다. 건전한 의도라고 해서 잔소리가 곱게 와닿지는 않는다.


결혼을 하고 내 살림을 온전히 갖게 되면서 나는 해방된 기분을 맛보았다.

20대 중간중간 자취도 하고 친구와 살아본 적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집이 아니었기에 포근한 집에 대한 그리움이 엄마의 잔소리를 지워내기도 했었다. 신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은 살림에 대한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정말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다른 종류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걸음걸이와 잔소리를 하지 말라는 잔소리.


아이를 낳고 팔자걸음이 된 것을 지켜보기 힘들었던 남편은 내가 걸을 때마다 지켜보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 덕분에 나는 잔소리를 안 하는 사람이었건만, 어쩌다 한번 하는 부탁도 잔소리로 듣는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렇기에 잔소리 같지도 않은 소리도 잔소리로 듣고 오히려 잔소리 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한다.

걸음을 이쁘게... 물론 이것도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인 것을 안다. (본인기 뵈기 싫어 그러는 건가?)

어찌 되었건 대부분의 잔소리는 일상생활과 관련되기 때문에 끝이 없다.




나는 잔소리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아니 인간은 누구나 다 그렇지? 그렇기에 누구나 잔소리와 싸워가고 잔소리를 이겨내거나 참아내거나..

나는 잔소리에 맞춰주는 걸로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가족이 아닌 사람의 잔소리는 따라지지가 않는다. 나를 위한 잔소리가 아니라 본인을 위한 잔소리이기 때문일까?

팀장의 잔소리와 재촉을 하루종일 듣고 있노라면 나를 위해 말하는 남편의 잔소리가 사랑의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내가 알아서 할게~!!! 자꾸 말하니까 걷는 것도 무서워~!" 라며 남편의 잔소리에 가끔 타박을 주기도 했는데

팀장의 잔소리를 몇 개월 듣고 난 어느 날,

의식적으로 다리에 힘주어 일자로 걷고 있는 날 보고 웃음이 났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남편은 잔소리를 하는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느껴졌다. 아마도 몇 개월간 어떤 자유도 가지지 못한 사무실 생활을 하다 보니 잔소리 역치가 올라간 것이 분명했다.

특히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 잔소리 정도는 정말 곱게 들리기만 했다.


많은 부부들이 서로의 잔소리로 투덜거린다. 내가 이야기하는 부부들은 모두 잔소리르 하는 사람과 잔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 거의 대부분 그랬다. 살림부터 육아까지, 그리고 요즘엔 서로의 외모관리 부분까지 잔소리 영역이 넓어졌다.


어떤 남편의 잔소리 이야기를 듣던 중, 나는 팀장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같은 공간에서 6시간 동안 3분 간격으로 잔소리를 듣고 지내던 나날들...

그날들이 있어 어찌 생각함 웬만한 잔소리가 나를 위한 따뜻한 말로 둔갑시켜 주는 좋은 경험이었나 싶다. 그렇다고 다시 그 공간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다만 나의 악몽 같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 것으로 나의 과거를 미화시킬 뿐이다.

평생을 살아야 할 남편, 가족.. 그들의 잔소리를 고깝지 않게 받아들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또 웬만한 사람의 잔소리쯤이야 잔소리로 들리지 않아 마음이 가볍다.

(한때는 너무나 나를 괴롭게 만든 팀장의 잔소리가 이제는 가족의 목소리를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이 되어 감사하다고 문자라도 해야 하나? ^^)




아마 잔소리 극복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에 꼭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잔소리를 극복하는데 좋은 방법은 극한경험을 한번쯤 해보는 것, 이것이 내 경험에서 찾은 해결책이다.


현재 사회생활하며 잔소리로 괴로워하는 나의 남편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지금의 경험이 가족에게 넓은 마음을 가지게 해 줄 것이라며 조금만 버텨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충고도 쓴소리도, 특히 나를 위한 재촉 따위는 절대 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하고 싶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덩어리가 아닌 도움이 되는 인간관계를 위하여..


오늘도 부단히 잔소리를 듣고 있는 당신이 참으로 대단하고 오늘이 있어 내일이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파이팅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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