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원언니와 렌카를 만나게 된 건 호이안 호스텔에서였다. 다낭에서부터 자전거로 세 시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을 때 그 둘은 한쪽에서 투어설명을 듣고 있었다. 직원은 나를 그 자리에 합류시켰고 곧이어 어색한 인사가 오갔다.
"Hi"
렌카는 동그란 안경을 끼고 긴 갈색 머리의 슬로바키아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친구로 보이는 지원언니가 있었는데 나는 처음에 언니가 한국인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니는 뭐랄까, 일반 한국인 관광객들보다 훨씬 개성이 넘쳤다. 머리카락에는 여러 빛깔의 실이 꼬아져 있었고 허리에는 빨간 무늬의 스카프가 치마처럼 둘러져 있었다. 나는 그런 언니가 신기하면서도 궁금했다. 티 없이 웃을 때 드러나는 언니의 송곳니,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의 유창한 영어실력. 언니는 같은 여자가 보아도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침대 세 개가 나란히 놓인 다락방 같은 곳이었는데, 언니는 가장 안쪽 침대에, 중간은 렌카, 그리고 내가 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짐을 풀었다. 둘은 계속 영어로 대화했고 나는 가시방처럼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그들에 대해 나는 궁금하긴 했으나 대화에 끼어들기도 그렇고, 머뭇거리던 중에 렌카가 화장실에 갔다. 그사이 나는 언니와 한국어로 몇 마디 나눴는데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언니와 렌카도 후에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고 함께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왔다고 했다.
"저녁 같이 먹을래요?"
언니의 말에 셋이 다 함께 길을나섰다.우리는 호스텔에서 얻은 맛집지도를 펼쳐메뉴를 정했고 그렇게 반바오반박(베트남식 딤섬)의 얇은 만두 식감과 까오러우(호이안 쌀국수)의 비릿함을 경험했다. 그리고는 상점가를 밤늦도록 돌아다녔다. 특이 호이안엔 맞춤 양복점이 유명했다. 언니와 렌카는 여러 가게에서 천을 몸에 둘러보고 옷도 입어보았다. 그러는 중에 나는 둘의 모습을 멀찌감치 구경만 할 뿐이었다. 나는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자전거에 싣고 갈 수도 없으니 애초에 욕심도 나지 않았다.
반면 지선언니는 모든 물건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언니는 곳곳을 다니며 독특한 물건을 구경했고 넉살 좋게도 가게 사장님들과도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언니는 매 순간 이걸 어떻게 좁은 가방에 넣어 갈지 고민했다.
우리는 호이안 강가로 나왔다. 낯에는 고요하던 강은 소원등을 띄우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배들 사이로 오색 불빛이 물길을 따라 떠내려갔다. 이참에 우리는 많이 걸었던 터라 배를 타보기로 했다. 이십 분 정도 태워 준다던 배 주인은 십분 정도가 되어 내리라고 했다. 언니는 웃으며 완강히 거부했다. 아직 십분 더 남았다는 언니의 여러 차례 항의에 주인은 기름값 좀 아껴 보려 했던지 마지못해 모터가 아닌 노를 저어 다시 강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다음날 바로 호이안을 떠날 생각이었다. 자전거로 다음 목적지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다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호이안을 다 보지 못했다는 찜찜함이 들었고, 무엇보다 언니의 한마디가 나를 붙잡았다.
"아직 6개월이나 남았는데 천천히 가요. 그렇게 다니면 쉽게 지쳐서 오래 못 가."
이미 인도에서만 6개월을 지내본 언니의 조언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내가 호이안에 일주일 가량을 지내게 된 것은 순전히 그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좋아서였다. 침대까지 기어들어온 햇살을 바라보며 누워있다가 배가 고플 때쯤 반미(베트남 샌드위치)를 사 먹으러 나갔고 밤에는 셋이 각자의 침대에 누워 수다를 떨었다.
한 번은 셋이 자전거를 끌고 바다로 향하던 길이었다. 논길에 물소를 끌던 남자가 우리에게 와보라며 손짓했다. 남자는 흔쾌히 우리를 물소 등에 타보게 했다. 직접 타보니 물소의 털은 볏짚처럼 뻣뻣했고 뜨뜻했으며 육중했다. 남자는 우리에게 집게손가락을 비비며 돈을 요구했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돈을 내야 한다고 남자가 우리에게 말해주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남자가 다른 사람을 물소에 태우느라 분주한 틈을 타 도망을 갔다. 셋은얼른 각자의 자전거를 집어 나란히 바닷가로 페달을 밟았다. 남자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멀어졌다.
바닷가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이번엔 자전거를 전용 주차장에 돈을 내고 받치라는 것이었다. 여행경험이 많은 언니는 이것도 일종의 사기일 수 있다고 했다.
"파킹 히얼! 파킹 히얼!"
논(베트남 전통모자)을 쓴 주차 관리요원은 고집스러웠다. 언니는 화가 난 듯 해변 앞에서 자전거를 돌렸고 나도 뒤를 따랐다. 그렇게 자전거로 십여분 더 갔을 무렵인가. 불과 주요 관광지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아무도 없이 한적한 해변가가 나타났다. 우리는 야자수 밑에 자전거를 받쳐놓고 경사진 모래사장을 내려갔다. 카페에서 음료를 시키니 직원들이 비치베드를 내왔다. 언니와 랜카는 비키니 차림으로 바다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그들은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서슴없이 헤엄쳐 파도를 탔다. 반면 나는 비치베드에서 한참 있다가 바다에 발을 담갔다. 검은 쫄바지에 검은 반팔티, 그리고 흰색 팔토시까지. 해변에는 나만큼 몸을 가린 사람도 없었다. 내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니 내 몸에 파도가 부딪쳐 부서졌다. 우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까르륵 웃었다. 비록 나는 발이 닿지 않는 깊이와 집채만 한 파도가 두려워 금세 뭍으로 나왔지만 그들은 한동안 더 그 안에 있었다. 내 눈에는 그들이 자유로워 보였다. 햇볕에 그을리는 것도 높은 파도도 두렵지 않아 보였다. 이제껏 나는 무엇이 두려워 그리 가리고 피하기 바빴을까. 자유를 찾아 떠나왔지만 여전히 내 안에 얽매인 것들이 많았다.
다음날 언니와 렌카, 그리고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다시 땀끼까지의 여정을 떠났다.
중간에 길에서 퍼져 버리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채로.
호이안. 내가 애정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노란색 집들과 형형 색색의 전등, 그리고 무엇보다 반미맛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