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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져니박 Jyeoni Park Sep 27. 2024

베트남 다낭에서 당근 거래

재미없어진 여행에 자전거를 사다


 다낭은 가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어 간판에, 한국어 잘하는 현지인들에, 심지어 야시장에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경고방송이 한국어로 흘러나왔다. 넘쳐나는 한국인들에 갑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이러려고 내가 외국을 온 게 아닌데.

 베트남의 스타벅스라고 불리는 하이랜드 카페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다음 여행지는 호인안, 역시 한국인들이 넘쳐날 것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베트남 여행 내내 한국의 느낌을 지우지 못할 것이란 생각 들자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 여행인가. 그냥 먹고 자고 돌아다니는 거? 기껏 3주 그런 생활이 반복되자 앞으로의 여행이 허무해졌다.

 그렇게 여행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데 그중 내 안에 남은 작은 불씨 하나가 계속 말을 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보고 싶어."

 이 말은 단순히 자전거를 빌려 바닷가를 잠깐 구경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자전거로 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무모하고도 방대한 생각이었다.

 처음엔 미쳤구나 싶어 애써 마음을 부정했다. 한국도 아니고 새 자전거를 덥석 사서 어쩌겠단 말인가.

 그렇다면 중고는?

 나도 모르게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보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아마도 세상에 어처구니없고 무모한 일들은 다 참을 수 없는 심심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지루한 여행 때문에 가슴이 터질 지경에 이르렀었으니까.


 몇 시간을 카페에 앉아 나는 기어코 한국의 당근 같은 베트남 중고거래사이트를 알아냈다. 일일이 번역기를 돌려가며 다낭에 내놓은 중고자전거를 찾았고, 맘에 드는 16인치짜리를 발견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는데 현지 전화번호로 인증을 해야만 판매자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것. 현지 전화가 없는 나는 좌절할 새도 없이 어떻게 하면 연락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머리를 싸맸다. 그러다 묵고 있던 호스텔 직원에게 찾아갔다.

 "중고 자전거를 사고 싶은데 연락을 할 수가 없어요."

 보랏빛의 신비로운 머리색을 가진 데스크 직원은 투숙객의 뜬금없는 말에 좀 당황한 듯싶었지만 친절히 연락을 대신해 주었다. 직원은 판매자와 통화를 마치고 내게 주소를 적어 줬다. 그랩(오토바이택시)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나는 곧바로 직원에게 시간약속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판매자와 다음날 아침에 만나기로 했다.


 분주한 당일 아침이었다. 판매자를 만나기 전 또 다른 직원이 내가 중고 자전거를 산다는 말을 듣고 일반 가격을 알아봐 주었다. 원래는 250만 동(약 13만 원). 내가 중고로 사는 가격은 170만 동(9만 원)이었다. 직원들은 비싼 편인 것 같다며 협상을 해보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은행에서 돈을 뽑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전거를 가지고 오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다시 중간 통신망 역할을 하는 호스텔 직원에 연락했다. 직원은 판매자가 서있다는 초록 간판 사진을 하나 보내주었다. 그 사진 하나 믿고 나는 더듬더듬 길을 찾아갔다.

 세 블록쯤 지났을까. 저 멀리 도로 건너편에서 자전거와 서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여긴 '당근이세요?'대신 무엇을 외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다가 자전거를 보니 생각보다 긁히고 녹이 슨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고 다른 자전거를 또 알아볼 수도 없고 타보기엔 문제없으니 가격이나 더 깎아보자 싶었다.

 "예쁜 아주머니 좀 깎아주세요."

 나는 번역기를 돌려 보여주며 애교를 떨었다. 아주머니는 새침한 표정으로 보다가 150만 동을 계산기로 보여주었다. 나는 더 깎아 보려고 했지만 돌아온 아주머니의 단호한 대답.

 "너 없이도 살 사람 많아."

 결국 150만 동(8만 원)을 냈다. 협상은 가차 없는 아주머니었지만 막상 돈을 내니 안장도 내려주고 휴대폰도 안 떨어지게 주머니에 잘 넣고 가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베트남의 여행을 함께할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 아마 베트남을 한 번쯤 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도로에 오토바이들이 얼마나 많이, 또 쌩쌩 달리는지. 나는 뒤를 못 살피고 방향을 틀려다 하마터면 따라오던 오토바이와 부딪힐 뻔했다. 한쪽에 멈춰서 놀라 입을 쩍 벌리니 나를 본 행인 아저씨가 꼭 말썽 부린 아이에게 으이그하는 표정으로.

 "우와아아아."


 나 잘한 짓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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