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후에로 가는 슬리핑기차를 탔다. 자그마치 11시간의 여정. 돈을 좀 아껴보겠다고 6인실 3층칸을 골랐다. 기차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내 방을 찾아가 보니 3층은 그야말로 천장과 거의 맞닿아 있어 꼼짝없이 누워가게 생겼다. 다행히 만석이 아니었던 터라 승무원은 나를 2층으로 내려주었다. 2층은 반대쪽 침대에 다리를 두고 구부려 앉아 있을 수 있는 수준. 구부정하게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계란을 까먹고 있는데 1층 침대 언니가 말을 걸었다.
"딸기 좀 먹을래?"
나긋나긋한 말투에 빵모자가 잘 어울리던 언니였다. 언니는 딸기를 건네고 나는 견과류를 건네며 대화를 나눴다.
"직업이 뭐야?"
"영어학원에서 초등학생 가르치다 그만두고 여행 나왔어요. 언니는요?"
언니의 직업 이름은 길었다. 무엇인진 몰라도 꽤나 복잡한 일인 듯했다. 자신은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자신의 언니가 카이스트에서 공부했단다. 그리고 언니가 한국에서 성형수술도 받았다는 이야기.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기차는 하노이를 벗어나 암흑 같은 길을 내달렸다.
#렁아저씨
내가 렁아저씨를 만난 건 후에역에서였다. 오토바이 호객꾼이던 아저씨는 내가 역에서 나오자 "곤니치와"라며 말을 걸었다. 입구는 관광객들과 호객꾼들이 한대 뒤섞여 북적였고, 나는 한국인이었기에 아저씨를 깡그리 무시하고 화장실을 찾았다. 그런 나를 아저씨가 뒤따라와 화장실은 저쪽이라며 손짓했다. 그럼에도 그때까지렁아저씨를 그저 많은 호객꾼들 중 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나는바로아저씨를 잊어버렸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우산도 없이 동네 산책을 나왔다.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는 점점 굵어지는데 후에성이 있는 다리를 건너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발걸음을 우물쭈물하는데 어느 카페 야외 의자에 앉은 사람이 나를 불렀다. 그제야 나는 어렴풋이 렁아저씨를 기억했다. 초록 장화를 신은 렁아저씨의 거무스름한 피부, 얼굴 곳곳에 패인 흉터가 나는 다소 무서웠다. 아저씨는 그런 내게 잠시 앉았다 가라며 옆의자를 두드렸다.
"내일은 뭐 해? 휴대폰 조심하고."
아저씨는 고급시트로 튜닝된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후에를 여행하거나 다낭에 가자며 영업을 하다가도 내 주머니에 삐져나온 휴대폰을 걱정했다. 6개월간 여행한다는 말에 여자 혼자 조심해서 다니라며 충고도 해주다가도 낡아진 관광지도를 꺼내 보이며 본업도 잊지 않았다. 도무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 렁아저씨였다.
"내가 시장까지 태워다 줄게. 무료로."
아저씨의 제안에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망설였다. 이걸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낮인 데다 차도 아니고 오토바이니 마지못해 올라탔다. 다리를 건너는 중에 비가 내 얼굴을 마구 때렸고, 지나는 오토바이 운전사들의 형형색색 우비가 사방에서 펄럭거렸다.
"투어 할 생각 있으면 미리 말해줘야 한다?"
아저씨는 이 말과 함께 정말 나를 시장 앞에 내려주고 홀연히 떠났다. 하장에서 오토바이를 징글징글하게 탔고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와 둘이 투어를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나는 렁아저씨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하기로 했다.
#치킨집에서 말아주는 계란간장 비빔밥
베트남의 옛 수도이자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후에(Huế)는 옛 왕궁과 왕릉이 많다. 그중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카이딘 황제릉을 구경하고 나오던 길이었다. 외진 곳이라 그랩(오토바이 택시)이 잡히지 않아 한 시간여를 걷고 있었다. 나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프라이드치킨'이라고 쓰여있는 추레한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는 영업이 끝난 건지 플라스틱 의자는 한데 쌓여있고, 식탁들만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노닥거리던 사람들 중 퉁퉁한 아주머니가 나와 앉으라고 의자를 빼주었다.
"원 치킨 껌(com 밥)"
아주머니는 나의 주문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뒤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기다림. 어디에서 잔치라도 하는 건지 노래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고 아주머니는 널찍한 접시를 들고 왔다. 접시 위에는 족히 2인분은 되어 보이는 흰쌀밥에 계란 프라이 세 개가 얹어 있었다.
"치킨은 어딨어요?"
꿩대신 닭, 닭대신 계란인 건가. 아주머니는 어깨만 씰룩하고는 친절하게 그 위에 간장도 뿌려주었다. 그리고 비벼먹으란다. 나는 헛웃음이 나오는데 배가 고프니 우선 입에 집어넣었다. 가격이나 사기당하지 말아야겠다며 먹는데, 왜 이렇게 맛있지? 고추 절임과 먹으니 금상첨화였다.
"5만 동."
계산을 하던 나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또한 번 헛웃음 쳤다. 하노이에서도 반찬 두세 가지 올라가도 4만 동을 받는데 계란프라이 세 개에 5만 동이라니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밥에 계란프라이 밖에 안 올려 줬으면서!'라는 말을 번역해서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어쩌라고 하는 식으로 어깨만 또 씰룩.
"아이 노우! 아이 노우! (I know!)"
이 바닥 물가를 안다고 나는 바락바락 우겼고 결국 3만 동만 주고 나왔다. 한동안 숙소에 돌아온 후에도 분노했다. 그런데 나중에 따져보니 한국 돈으로 고작 천 원 차이. 순간,내가 참 옹졸해 보이기도 하고, 베트남 물가에 적응을 완벽히 한 건가 싶기도 하고. 활활 타오르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