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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져니박 Jyeoni Park Oct 18. 2024

250원짜리 빵이 없어 길가에 드러눕다

호이안-땀끼, 45km, 약 6시간

호이안에서 자전거로 호기롭게 출발했다. 고작 초코바 두 개와 500ml 생수 두병을 사들고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야자수가 빽빽이 깔린 육지 사이로 넓은 강이 흐르는 모습이 다리에서 내려다보였다. 호이안을 지나 접어든 외도로는 매끄럽고 한가했다. 주로 오토바이가 다녔고 푸른 초원에 간간히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경치도 배가 고프니 다 허사였다. 이미 점심시간을 넘긴 때였고 배에서 천둥이 일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가던 길을 마을 쪽으로 틀었다.


이름 모를 마을에 들어간 나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변변한 식당하나 없을 수 있지? 그곳은 마치 우리나라로 치자면 '00리'정도 되는 시골 동네였다. 길가에는 몇 개 골목 슈퍼만 과자들을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있었다. 식당 같아 보이는 가게도 몇 군데 지나쳤으나 다 망했거나 사람이 없었다.


"조금만 더 가보자. 조금만."


나는 초코바 두 개로 한 시간가량 더 식당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다시 큰 길가로 나올 때까지 찾지 못했다. 나는 다음 마을이 나올 때까지 양 옆에 풀만 무성한 길을 계속 달려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달렸을까. 어느 순간부턴가 손발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핑돌고 온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나는 곧 에너지가 다 할 것 같은데 길은 계속되었다. 일자로 난 아스팔트 도로 양 옆에 야자나무가 일정하게 심긴 광경은 마치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도 점차 드물어졌다. 고요함이 주는 평화는 공포로 바뀌어갔다. 나는 어느새 공동묘지를 지나고 있었다. 힘없이 페달을 밟으며 저곳에 묻혀 있는 이들을 생각했다. 죽음이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더 이상 페달을 밟을 힘도 없어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야자수 나무 그늘밑에 앉았다. 먹을 거라곤 이제 호이안에서 떠날 때 지원언니가 챙겨준 해바라기씨뿐이었다. 그거라도 먹고살겠다고 껍질을 까보는데 입에 들어가는 양보다 바닥에 흘리는 게 더 많았다. 해바라기를 까먹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급한 마음에 그중 몇 개는 껍질채 입에 넣어도 보았다. 입안에 꺼칠 거리는 게 못할 짓이었다. 나는 먹기를 포기하고 개미가 지나다니는 맨바닥에 몸을 뉘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죽음은 꼭 어두운 날에만 찾아오리란 법은 없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디푸른 하늘을 바탕으로 야자수 잎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나는 눈을 제대로 감지 못했다. 히치 하이킹을 해야 하나 대사관에 연락은 어떻게 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공포감과 함께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렇게 지도를 살펴보는데 15분 거리에 마을이 하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그저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풀밭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의심이 들었지만 나는 이 길 외에는 선택권이 없었다. 아니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울퉁불퉁한 흙길에 자전거가 덜커덩거렸다. 무성한 풀과 나무들로 둘러진 그 길은 사람보다 동물이 튀어나오기 딱 좋은 곳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정신없이 몰았다. 그리고 계속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말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신기한 건 구글맵이 어떻게 이 좁은 흙길까지도 알고 있냐는 것이었다. 정말 내비게이션은 풀숲을 헤쳐 나를 어느 마을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가릴 것도 없이 먼저 눈에 들어온 작은 문구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빵을 집어 주인에게 내밀었다. 주인은 온화한 미소를 가진 젊은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혹여 여기서도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가격은 고작 250원. 나는 가게 한쪽에 앉아 빵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몇 개를 더 골라 사 먹는데 앞집 한 할머니가 길가에 떨어진 장갑을 주워다 주었다. 그리고는 그걸로 흙 묻은 내 등을 털어주었다. 아까 바닥에 누워 있다가 등을 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달려왔었나 보다. 나는 할머니에게 감사의 표시로 씩 웃어 보였지만 갑자기 그런 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기운을 차리고 다시 길을 가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빵하나가 없어서 길에서 굶어 죽을 뻔하다니. 참으로 허무했다.


목적지 땀끼에 이르니 펼쳐진 논밭에 석양이 내려앉았다. 시장엔 저녁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이 북적였고 식당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낮에 있었던 일이 모두 거짓말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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