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져니박 Jyeoni Park Nov 01. 2024

변태, 뗏기간, 그리고 타이어 펑크

베트남 나트랑

나트랑 역에 도착했다. 간밤에 씻지도 못한 터라 내 얼굴에는 기름기가 좔좔 흘렀다. 그렇게 역 입구 쪽 의자에 한참 앉아있었다. 패드로 할 일이 좀 있어 거기에 몰두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한 남자가 나와 가까운 입구 벽에 비스듬히 기대 섰다.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역에 도착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꽤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분이 점점 이상했다. 왠지 남자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 소매치기일까. 조금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가 쉼 없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시선 끝에 흐릿하게 걸쳤다. 몸이 빳빳하게 굳는 듯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정면만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동시에 남자도 몸을 돌려 홀연히 사라졌다. 한국에서도 본 적 없던 변태를 베트남 나트랑에서 마주한 것이다.

만약 밤에 그런 일을 겪었다면 끔찍하게 기억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는 화창한 대낮이었고 사람이 많이 오고 가는 역이었기에 허허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꼬질한 사람에게 그럴 수 있나. 내가 만만해 보였나. 아무튼 별로 길게 마음 쓰이지 않았다. 먼저 보내놓은 자전거나 찾으러 가야지. 과연 나트랑에 잘 도착했을까.

자전거는 천과 뽁뽁이로 꼼꼼하게 포장되어 역무원 손에 이끌려 나왔다. 그새 정이 들은 건지, 나는 반려견을 찾으러 온 주인처럼 자전거를 보고 밝게 웃었다.

역무원은 그 자리에서 포장을 벗겨주었고 나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리고 나트랑 중심가로 들어갔다.

뗏(베트남의 설날) 기간의 나트랑은 한가로웠다. 역시 큰 도시답게 높은 아파트 단지들과 잘 정비된 도로가 마치 한국에 온듯한 착각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도시 풍경에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꽝응아이에서 겪었던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팬케익까지 아침으로 구워주는 나트랑의 한 호스텔 로비에는 서양인 백패커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마치 미국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는데 나만 동양인 같달까. 하이틴 영화에서 볼법한 자유로운 분위기에 주눅이 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체크인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띵. 호이안에서 만났던 지원언니를 마주했다.

"언니!"

이미 와있다는 건 알았지만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두배로 기쁜 일이었다.

볕이 잘 드는 객실에서부터 중국인들이 북적거리는 태국 음식점, 그리고 다시 호스텔 로비 소파에 이르기까지 지원언니와 그간 있었던 일을 끊임없이 나눴다. 언니는 내 다리에 갈색빛으로 군데군데 남은 모기자국을 보고는 무슨 약한 사람 같다고, 주삿바늘자국 같다고 농담을 했다.

언니는 달달한 치즈케이크를 나는 퍽퍽한 통밀빵을 우걱우걱 씹었다. 뗏기간이라 나트랑 물가가 거의 한국만큼이나 뛰었다. 카페에 가도 뗏 할증료 같은 것을 붙였다. 그러는 통에 식당에서 손바닥만치의 팟타이를 먹은 게 전부인 우리는 마트에서 그나마 저렴한 빵을 골라 온 것이다.

"우리 갑자기 가난해졌어."

언니와 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실없이 웃었다. 호이안에서 호의호식하던 시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트랑에서 근 이틀간은 행복했던 것 같다. 숙소에서 몇 분 정도 걸어 나가면 야자수 나무 너머에 푸른 바다가 철썩거렸고 휴가를 온 사람들로 근처 상점가와 카페에도 활기가 넘쳤다. 나는 자전거를 팔겠다는 계획은 잠시 접고 나트랑 외곽을 한 번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휘파람을 불며 나오는데 숙소 경비 아저씨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자전거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푹 주저앉은 타이어였다.

순간, 여행을 다시 떠나보겠다는 의지도 함께 주저앉았다. 더 이상 자전거로 인해 골머리 썩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날 하루는 자전거를 팔아보겠다고 난리였다. 이름 모를 온라인 중고 시장에도 올려보고 자전거에 영어와 베트남어로 가격도 써붙였다.

당연히 사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다음 날은 자전거를 고치러 다녔다. 정말 희한하게도 나트랑엔 번듯한 자전거 수리점이 없었다. 그나마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한 곳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 모두 같은 쌀국숫집을 알려주었다.

나는 의아했다. 자전거를 고치는데 웬 쌀국숫집? 속는 셈 치고 그곳을 걸어가 보았는데 그제야 납득이 갔다.

그들은 간판도 없이 길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고쳐주고 있었다.

'자전거를 고쳐주시러 올 수는 없나요?'

번역기로 나는 그렇게 물었다. 왜냐면 그곳은 내 자전거가 세워진 곳에서 족히 이십 분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잠시 고민하다 해주려는 듯했지만 주인아주머니가 단호히 말렸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내게 번역기를 내밀었다. 추가 요금을 내면 자신의 오토바이로 자전거를 같이 끌고 와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돌렸다. 더 이상 자전거에 돈을 쓰고 싶지도, 오토바이로 자전거를 끌고 오는 묘기를 부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자전거는 철퍽거리긴 했으나 나쁘지 않게 굴러갔다. 그렇게 갔다 왔다 갔다. 한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악착같이 자전거를 끌고 가 그들에 보란 듯이 내밀었다. 아저씨는 빙긋 웃더니 새까만 손으로 타이어를 벗겨 고무튜브를 꺼냈다. 그리고 비눗물에 넣어 기포가 올라오는 곳을 찾았다.

십여 분도 안되어 자전거는 다시 살아났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멀쩡해진 자전거에 다시 여행을 떠나보자는 의지가 샘솟았다. 뗏기간이라 숙소 비용도 오르고 외곽으로 피신을 가보려는 심산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페달을 밟으며 시내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기분 좋게 바닷가를 따라 달렸다.

그날 숙소 사기를 두 번이나 당하고 길바닥에 나앉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될지 전혀 모르는 채로.



다음 편에 계속...

  



이전 11화 꽝응아이에서 자전거를 팔아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