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랑 어느 해수욕장에는 명절 휴가를 나온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흐린 하늘아래 바닷바람이 선선히 불어왔다. 나는 자전거를 도심 안쪽으로 몰았고 언덕을 넘자 나트랑대학교가 나왔다. 한국 대학로와 별반 다르지 않던 모습. 근교를 찬찬히 둘러보다 숙소를 찾아 나섰다.
분명 지도에선 이곳이 맞는데. 막상 가보니 막다른 뒷 골목길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옮겨 보지만 분명 주소가 여기었다.
골목초입가정집 앞에 앉아있던 아저씨 A가 나를 보고 무슨 일이냐는 듯 다가왔다. 나는 숙소 주소를 보여주었고 잠시뒤 숙소 주소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숙소는 여기로부터 차로 족히 삼십분은 가야 하는 지점에 있었다.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되고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어느새 동네 또 다른 아저씨 B가 나와 내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뒤이어 아저씨 A의 딸, 터언니가 무슨 일인가 나와 내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언니는 지금 뗏기간이라 방이 거의 찼을 거라고 했다. 그사이 나는 조금 떨어진 또 다른 숙소를 발견했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한 번 가보고 없으면 다시 돌아와."
언니의 그 한마디가 내겐 물에 빠졌을 때 던저진 튜브 같았다.
한참 또 달려 두 번째 숙소를 찾아갔다. 주소는 맞으나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봐도 인기척이 없었다. 문 넘어 개만 왕왕 짖어댔다. 호스트에게 보낸 문자에 답이 오질 않았다. 조급해진 마음에 근처 약국에서 호스트에게 전화 좀 해달라고 했다. 약국 직원 휴대폰 너머로 한 남자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그렇게 통화를 한참. 직원은 번역기를 내밀었다.
'이제 운영 안 한데요.'
그 후로 나는 컴컴해질 때까지 숙소를 찾아 헤맸다. 온라인에는 이미 호텔들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리고 찾아가는 족족 만실이었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터언니네 집압에 돌아왔다. 내 몰골은 땀과 먼지에 뒤섞여 추레해 있었다. 그런 나로 인해 골목이 또다시 발칵 뒤집혔다. 아저씨들은 내 잘 곳을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모두 허사였다.
'괜찮으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요.'
아저씨 A가 번역기를 돌려 내게 내밀었다. 아저씨는 인자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장에 잘 곳이 정말 없었다.
터언니는 처음엔 낯선 이의 등장에 못마땅한 표정인 것 같았다. 그러나 언니는 원래 좀 무뚝뚝할 뿐, 나를 살뜰히 챙겼다. 언니는 나를 이층 방으로 안내했다. 방을 열어보니 인형이 침대에 잔뜩 놓여있었고 벽에는 나체 여성이 요염하게 앉아있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언니는 인형을 치우며 이 방이 예전 사촌동생이 살던 곳이라고 했다. 우리는 잠시 침대에 나란히 앉아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먹었어?"
언니는 허기진 나를 1층 주방으로 데리고 갔다. 주인아저씨만큼이나 인자한 얼굴의 아주머니는 내게 라면을 끓여 주셨다. 그리고 상에는 여러 베트남 명절음식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 반쯩(베트남 설날 때 먹는 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별한 맛은 아니어도 찰진 주먹밥 같은 식감이 가끔 생각이 난다.
밥을 먹던 중에 언니 친구가 집에 왔다. 오픈 숄더옷에 긴 생머리를 한 언니 친구는 부모님과도 잘 아는 사이인지 그들에게 살갑게 굴었다.
"우리 카페 가는데 너도 따라갈래?"
터언니가 내게 물었다. 사실 피곤에 절어 집에 있고 싶었으나 언제 또 현지인들 틈에 끼어 볼 기회가 있겠는가. 그렇게 언니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낮에 떠나온 나트랑 중심가로 나갔다.
언니는 친구와 나란히 오토바이를 몰며 수다를 떨었다. 어떻게 그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로에서 대화가 통하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오토바이는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관광지를 모두 지나쳐 마치 현지인들만 올법한 골목에 있는 카페에 내렸다.
카페엔 또 다른 언니 친구들과 심지어 친구 어머니까지 나와 있었다. 그들은 다들 가족 같은 사이처럼 정겨웠다. 젤리가 들어간 밀크티를 시켜놓고 가운데에는 무슨 씨앗을 잔뜩 쌓아두고 이빨로 까먹었다. 그들은 딱딱 잘도 까먹는데 나는 계속 껍질이 씹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 속에 나는 더욱더 껍질 까기에 열중했다.
"친구 어머니가 네 자전거 사고 싶으시데."
터언니가 내게 통역을 해왔다. 아주머니는 나중에 터언니 집으로 내 자전거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마치 꽉 묶인 실이 하나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하루를 통해 깨달았다. 시련이 오면 좋은 일이 생기려나보다 생각하면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