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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이 울려 퍼지는, 기차로 말레이시아 입국하기

말레이시아 페낭

by 져니박 Jyeoni Park

베트남에서 캄보디아, 캄보디아에서 태국까지. 육로로 국경을 몇 번 넘어 봤음에도 여전히 나라를 건너는 일은 내게 미지의 세계 같고 떨리는 순간이다. 더구나 말레이시아와 근접한 태국 남부는 무장강도로 인해 가끔 총격 사건도 있다니 걱정이 앞서기도 한 여정이었다.


나는 푸껫에서 국경 근처 도시 핫야이로 향했다. 무려 열 시간이나 걸렸는데, 이젠 버스 안에서 시간 보내는 일에 도가 텄던 지라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들개가 몇 마리가 돌아다닐 뿐 사방이 컴컴했다. 평소 같으면 재고 따지고 흥정도 했을 텐데, 무서운 마음에 그나마 다가 온 오토바이 택시 하나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다.

내일이면 기나긴 태국 여행도 끝이구나.

나는 벙커 침대에 들어앉아 말레이시아 입국 준비를 했다. 무비자는 혹시 모르니 들어오는 게 있으면 나가는 차편도 끊어 놔야 한다. 근데 MBTI로 따지면 완전히 P인 내게 언제까지 그 나라를 여행할지는 도통 미지수였다. 지금까지 여행한 바로는 예상 기간을 넘기지 않은 나라들이 없었다. 베트남은 3주를 여행하려고 했는데, 한 달 반을 있었다. 캄보디아는 프놈펜에서 친구를 만나고 씨엠립에서 앙코르와트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한 달 비자에 쫓겨 도망치듯 태국으로 왔다. 그리고 태국에는 두 달 가까이를 있었다.

과연 말레이시아에서는 얼마나 있게 될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잠들었던 태국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아침 일찍 짐을 싸들고 핫야이 기차역으로 향했다. 어젯밤 오토바이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적막한 풍경과 다르게 아침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아직도 다 먹어보지 못한 알 수 없는 시장 음식들에 자꾸만 시선이 갔는데 그저 궁금함과 아쉬움만 남기고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막상 가보니 국경을 넘는 기차역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동쪽이든 북쪽이든 여느 태국 기차와 똑같은 형태에 가격도 몇천 원 안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창문이 사방으로 열린 기차를 한 시간가량 타고 오니 국경 느낌이 나는 역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내리자 갈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입국심사 줄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짐검사부터 입국심사대까지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았던 것 같다. 바로 앞에 사람을 두고 멀찌감치 있는데 심사대 직원이 앞사람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나는 아차 싶었다.

"어디서 묵을 거예요?"

나는 숙소 예약을 깜빡했다. 그간 태국 여행에 너무 어려움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님 전날 말레이시아를 나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는데 정신이 팔린 건지. 가장 기본적인 숙소도 예약 안 하고 다른 나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평화롭게 기다리던 나는 칼날 위에 선 것 마냥 몸이 바싹 굳었다.

"Next! 다음 사람이요."

심사원이 나를 불렀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앞으로 나가 여권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켰다.


"드디어 왔다!"

갑자기 내 여권을 받아 든 심사원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그는 근처에 서있던 여직원을 들뜬 목소리로 불렀다.

"네가 좋아하는 한국사람이야!"

한국 드라마 때문일까, 아님 케이팝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직원 둘은 그렇게 나를 가운데에 두고 희귀한 것을 발견한 것 마냥 신나서 몇 마디 주고받았다.

"너 온라인 입국 신고서 썼어?"

심사대 직원이 벽에 큐알 코드를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아직 안 했다고 하자 아까 여직원이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 친절히 알려주었다. 그리곤 이따가 써도 된다고 흔쾌히 보내주었다. 나는 건물 위층으로 빠져나와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한국사람인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여행하면서 지나온 입국 심사장 중 가장 부드러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빠당 베사르에서 버터워쓰까지 지하철 같은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내가 말레이시아에 왔다는 걸 가장 실감한 순간은 창밖 너머로 간간이 보이는 이슬람 사원과 객실 안 히잡을 쓴 대다수의 여성들이었다. 불과 두 시간가량 태국에서 내려왔을 뿐인데 색다른 풍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버터 워쓰에 내려 페낭으로 배를 타고 들어갔다. 그리고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한 걸음 한걸음마다 세상이 계속 바뀌었다. 처음엔 돔 지붕이 돋보이는 이슬람 사원으로 시작해 다음은 인도의 힌두 사원을, 그리고 중국 사원을 지나쳤다. 그렇게 숙소에 들어와 한숨을 돌리는데 아잔소리에 건물이 진동했다. 마치 말레이시아 여행의 시작을 알리듯 그 소리는 한참 동안 동네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핫야이에서 페낭까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말레이시아
페낭 도시 풍경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음식(아쌈 락사, 깬돌, 사태, 로작)
페낭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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