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하산을 시작했을 무렵, 광주행 열차 안은 한산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피해 흘끔흘끔 창밖을 바라보았다. 드넓게 펼쳐진 논과 밭, 그사이 드문드문 있는 마을들. 우리나라 호남선 철도길 풍경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광주까지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2년 전 내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나는 고작 광주에 4개월을 살았다. 차로 두 시간가량 떨어진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기본월급 받아가며 고시원에 살겠다고 했을 때 특히 아빠는 몹시 언짢아하셨다. 곧 열악한 대우에 후회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짐을 싸들고 광주로 내려갔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두려움은 한가득이었고 고독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저런 기억을 되살리다 보니 기차는 광주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서둘러 버스로 갈아탔다. 하늘은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는 도시의 풍경들은 예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서구에서 광산구까지, 1시간가량을 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생각이 새록새록하던 중 어디쯤 왔냐는 M 씨의 전화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약속에 조금 늦은 탓에 보폭을 넓혀 길을 걸어갔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내가 사는 시골에선 자주 볼 수 없는 감각적인 펍들이 저마다의 조명을 내비치고 있었다. 좁은 인도 위엔 내 앞으로 커플 한쌍이 밤산책을 나온 듯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왼편에 선 여자가 이상하게 낯이 익다. 내 생각이 통했는지 여자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여자는 다시 고개를 돌리려다 눈이 커졌다.
"Y 씨?"
"J 씨?"
작년 10월에 서울에서 보고 반년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한 M 씨까지 해서 우리 셋은 북적이는 식당가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것이지만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가 별로 필요치 않을 만큼 우린 회사에 다니던 때와 똑같이 깔깔 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태국식 뼈찜이라는 랭쌥을 하나씩 뜯으며 길지 않던 기간에 수없이 생겨났던 에피소드들을 다시금 꺼내놓았다.
"이제 그만둔 지도 2년이 넘어가는데 편하게 부르시죠?"
우리 셋은 나이가 모두 달랐음에도 여전히 '~씨"라고 불렀다. 오히려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가 손가락 발가락만 잔뜩 오므리게 되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반말보다 존댓말을 쓰는 사이의 사람들이 이렇게 편할 수 있다니 새삼 아이러니했다.
광주에서의 밤이 깊어갔다. 그럼에도 우린 낮처럼 시내를 돌아다녔다. 방탈출이니 인생 네 컷이니 으레 놀듯 하고 길가로 나오니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M 씨와는 먼저 헤어졌고 Y 씨와 나는 숙소를 예약해 놓았다. 시내에서 숙소까지 차로는 가까웠으나 버스는 끊겼고 택시는 잡히지 않아 걸어가기로 했다.
우린 어느 하천을 건너고 구불구불 동네를 지나 2시간 가까이를 걸었다. 조금 찌그러진 달이었지만 하늘에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밤산책의 기분을 내주었다.
"다른 지역에 살 일이 생기면 광주에 살고 싶어요."
Y 씨와의 일상대화가 깊어지던 중 내가 말했다. 나는 마냥 광주가 좋았다. 도시 같으면서도 차갑지 않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그게 지난 광주에서의 짧은 내 생활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실제 모두가 생각하는 이미지 일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내게 광주는 또 다른 고향이나 다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