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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솝 Oct 29. 2022

우리 커플의 9년 연애사 #3

나에게도 지옥 같은 시간이 있었다

| 나에게도 지옥 같은 시간이 있었다.



여자친구는 아마 나만큼 힘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여자친구는 슬픈 일이나 화나는 일이 있어도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고 금세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였다. 싸움이 잦아지면서 나의 마음속의 상처는 점점 깊어졌다.


우리의 싸움 빈도는 점점 잦아져 이제는 며칠 간격으로 계속 싸웠다. 싸우는 이유도 굉장히 사소한 것들 때문이었다. 한 번은 내가 실수로 음식 메뉴를 잘못 주문했는데 여자친구가 내 잘못을 매몰차게 지적했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 왜 내 실수를 감싸주지 못하냐고 하면서 싸움이 시작되기도 했다.


초반에는 싸우고 나면 서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싸움이 끝이 났다. 그러나 싸움이 잦아질수록 싸움은 점차 전쟁으로 변했다. 서로가 미안함을 느끼기보다는 상대방에게서 항복을 받아내야만 싸움이 끝이 났다. 싸우고 나면 반드시 한 명이 울거나 둘 다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아졌다. 전쟁이 끝난 후에 전쟁터가 황폐해지는 것처럼, 싸움이 끝난 직후의 내 마음 또한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당시에 싸움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법 외에는 다른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싸우지 않을 수 있다고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냥 나는 앞으로도 이 사람과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날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시험 시간에 싸우는 것이었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여자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다 싸움이 발생하면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핸드폰만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나선 싸움이 해결되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붙잡고서 못다 한 시험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한 상태에서 하는 과제나 시험공부가 당연히 효율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한 번 싸우고 나면 시험공부를 새벽 늦게까지 해야 했다. 이렇게 연애가 나의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을 미치고 있었다.






사귄 지 일 년쯤 되던 날, 우리는 과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 덕분에 중국 북경으로 반년 간의 유학을 떠났다. 우리의 관계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몰고 올 중국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중국에서의 낯선 환경은 나에겐 굉장히 큰 스트레스였다. 나는 해외에서 살아보는 게 처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중국이 좋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의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어민 교사의 수업 내용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버스 안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났다. 아저씨들은 식당 안에서 담배를 피질 않나, 내 룸메이트로 지정된 중국인은 대화도 통하지 않고 생활패턴도 나와 정 반대였다. 설상가상으로, 양식을 좋아했던 나는 중국에서의 음식이 전부 입에 맞지 않았다.


먼 이국 땅에서 내 옆에 하루 종일 붙어 다녔던 여자친구도 예민해진 나 때문에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리는 갈수록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는 서로 의지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공격했다. 싸움이 시작되면 “네가 그렇게 행동했더라면 우리가 안 싸웠겠지”라며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우리가 싸우면 같은 반 학생들은 우리의 눈치를 보곤 했다. 이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있으면 싸우니까 우리는 거리를 둬야 했다. 그런데 도무지 거리를 둘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매일 수업을 같이 들어야 했다. 그래서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내 정신을 짓누르는 감옥 같이 느껴졌다. 정말 지옥 같았다.


학창 시절 때 누구나 줄다리기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손에 불이 날 것만 같이 있는 힘껏 줄을 잡아당기다가, ‘아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만큼 힘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우리는 무력감을 경험한다. 이 순간에는 손이 탈 것만 같이 힘을 냈던 그 모든 순간들을 뒤로한 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탁’ 하고 줄을 놓게 된다.


중국 유학이 한 달쯤 지나, 여느 때와 같이 싸우다가 서로에게 고성이 오고 가던 어느 날에, 나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잡아당기던 줄을 ‘탁’ 하고 놓아버린 걸 느꼈다.


우리는 결국 이별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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