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쌤과 함께 나누는 100일의 생각 산책
인류 문명은 인간의 사회성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여정을 함께 하기 위해 데려온 사회적 동물들 위에 세워졌다.
<애니멀 커넥션>
소에게 장난치다 소떼에게 짓밟힌 관광객'
중국 우타이산으로 트래킹 중이던 관광객이 소들에게 집단 공격을 당하는 영상을 봤다. 드넓은 초원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으며 느린 속도로 되새김질을 하며, 눈을 꿈뻑 꿈뻑거리는 모습이 우리가 소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공격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평화로운 그들은 인간에 의해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집단을 이루며 살아왔다다. 최초의 문명,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 그곳에서부터 가축화되기 시작한 소들은 문명의 발달부터 우리와 늘, 함께였던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소는 대체로 평화와 근면, 성실, 인내를 상징한다. 투우장에서 싸우는 황소조차, 최선을 다해 전력 질주하는 모습에서 성실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소의 이미지는 한결같다.
누워 있는 소, 풀을 뜯어 먹는 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소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소와 소가 마주보고, 서로의 눈을 꿈뻑거리며 눈빛을 주고 받기도 한다. 의사소통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는 부족하지만, 눈빛과 몸짓으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내 앞에 있는 그들이 가족이라는 것과, 그들 옆에 있는 또 다른 소들이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소는 다 알고 있다. 본질적으로 소들은, 사회화된 동물에 속한다. 고래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경이로움에 이르지 못했지만, 강아지와 고양이처럼 인간의 가족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그들은 분명, 존중 받아야 마땅한 우리와 같은 사회적 동물이다.
소는 인간이 풀을 스테이크로 바꾸기 위해 발명한 생물학적 기계다.
X(옛 트위터)에 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no)의 말이, 충격적이다. 육식을 버리지 못한 나에게 문장에서 묘사된 소의 운명이 지나치다는 생각과 함께, 언제나 그렇듯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 어떤 동물보다 가깝게 인간과 함께 지내왔던 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더 많은 존중이 필요하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동물도 아니고, 멍청한 동물도 아니고, 먹이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단순히 우리의 먹이 자원이 아닌, 사회적 자원으로 나아가, 사회적 이웃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도 감정을 느낄까?
소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소가 자라는 좋은 환경은 무엇일까?
소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
절대로 생물학적 기계가 아닌 소들에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어미 소와 송아지를 떼어놓아 생산 기계로만 대했던 농부들에게, 경고 문구가 있음에도 등산 스틱으로 소들을 괴롭혔던 나쁜, 인간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는 것도 좋은 활동이 될 수 있다.
언제부터 소들은 우리와 함께 있었을까?
만약, 소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주 식량은 무엇일까?
식량이 아닌 친구로 소를 대한다면 소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소를 주제로, 사회적 동물에 대해, 가축화된 동물에 대해, 인간의 식량이 된 동물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