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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 천사 May 29. 2023

영혼을 사냥하는 유혹

상간녀는 사이렌이었다.

지옥가도 좋아! 이혼해 줘!

소리치는 데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여.

눈동자도 초점이 없어.

섬뜩해서 소름 끼쳐.

아무래도 정신병원에 보내야 할까 봐.

청진기를 귀에 건 의사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커피샾은

둘만 있어도 좋아요라고

말하듯 한산했다.

카운터엔 사과같이 동그란

얼굴을 가진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갓 스물이 넘었을까?

아르바이트생은 눈이 마주치면

배시시 웃었다.

천진한 생의 표정이었다.

나도 한 때는 

저런 표정으로 살았는데.

그녀에게  이런 일이 있었어 

스토리를 푸는 동안

알 수 없는 절망이 눈밭에 찍힌

발자국으로 선명해지곤  했다.


불륜이 들통나면

실수였다고 하지 않나?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러게, 그 정도면 말기 환자인 거 같아.

불륜 환자는 어디에 입원하나?

멍한 척 물어보았다.

네 말대로

귀신한테 홀린 거 같은데.

너라도 살아야지, 정신 차려.

귀신 밥으로 주든지, 지옥 불에 던지든지

원하는 대로 해 줘.

그녀는 내가 걱정스럽다면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녀를 카운슬링으로 둔 고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빙빙돌기만 했다.




인생길을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라 한다.

예고 없는 풍랑을 만나는가 하면

스스로 좌표를 세우고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나, 내 생의 좌표는 삭제되고 있었다.

누군가 훔쳐간 것처럼.

더구나

인생이란 바닷길에는

사이렌의 노랫소리가 물결친다.

사이렌은

선원을 유혹해 바다에 빠져 죽게 하는

그리스 신화 속 마녀다.

사이렌의 노래에 홀린 사람은

백골이 되어 유혹의 섬에 쓰레기로 쌓인다.

사이렌은 은밀한 곳에 숨어서 

영혼을 사냥하는

악마의 현신으로 상징된다.

얼굴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한 치 앞을 못 보는 눈을 속일 수 있다.

몸은 독수리 날개라서

장소를 가리지도 않는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를 통해

유혹에 홀려 파멸하는 인간군상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달라진다는

힌트도 담아 두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에겐

유혹을 이기는 지혜를  

배운 길목이기도 했다.

키케로와의 인연은

구원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키케로의 조언대로

사이렌이 사는 섬을 지나는 동안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아

생명을 보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 자신은 귀를 막지 않고

밧줄로 몸을 돛대에 묶어 두었다.

사이렌의 노래가 궁금했던 까닭이었다.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만 오디세우스는

죽음을 부르는 노래라는  경고를 잊고

 몸부림쳤다.

밧줄에 묶인 자신을 풀어달라고.

천만다행으로 선원들이

귀를 막고 있는 바람에

오디세우스는 목숨을 잃지 않았다.


남편도

귀머거리가 되었어야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결혼이란 밧줄에 묶여서 

풀어달라고 악을 쓰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순간, 이혼이라는 열쇠로

풀어 준다면 그가 꿈꾸는

살맛 나는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바다에 거꾸로 잠수하든 말든 

풀어줘도 나를 비난할 사람은 없다.

선택은 내게 있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해야만 했다.

마치 가시 박힌 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심정이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잠을 자는데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발이 땅에 닿는지 아닌지 감각 없는

시간이 길어졌다. 

산 송장이란 것이 이런 모습이겠구나

체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싶어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그와 나의 침묵 전쟁 속에서

가정이란 것이 무덤이 될 수 있다는

현장도 실감했다.


어느 날, 나는

당신 소원대로 이혼하자고 선포했다.

그날부터, 신기하게 몸도 맘도 가벼워졌다.

그리곤, 나는 나에게 열중했다.

그를 남편이 아니라 타인으로 대했다.

청개구리 심보인지

막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니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나 대신 남편이 고민하고 있었다.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 짐승처럼

잔뜩 웅크린 채로 조용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새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존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이 얼마나 

허술한 존재인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남편을 타인으로 바라보니

무엇에 끌려다니는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상황이

욕망의 올가미에 걸린 한 마리 새처럼

측은해 보였다.


유혹의 영은

눈과 귀를 통해 감각에

쾌감을 저장하고 기억하게 하여

끊임없이 속삭인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야.

그냥, 모른 척하고 속는 척 살아.

별 수 없잖아.

그래, 나도 그러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총알을 

날려봤자 소용없단 것쯤은 안다.

하지만, 내 인생을 그런 

속임수로 인해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를 유혹한 상간녀는 사이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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