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이스크림만 먹고 왔어요
그녀가 먹었다는 아이스크림은?
그해 여름은 여름이 아니었다.
계절도 가슴으로 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호텔이거든.
머리도 식힐 겸 와.
그녀는 뜬금없이 문자로
위치 지도까지 보냈다.
무슨 일이지?
점심 같이 먹자며 문자 보냈더니.
호텔로 오라는 그녀.
바닷가 커피샾에서 바다빛 블루웨일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던 것뿐인데.
오늘따라
그녀의 배려가 수상했지만.
바다는 보고 싶었다.
벚나무가 초록초록한
호텔 진입로를 지나면서도
푸른 바다만 상상했다.
호텔 주차장에 들어서려는 순간,
그녀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놀라지 말고, 호텔에서 남편 봤어.
그녀의 말 줄임표 속에는
수많은 단어가 뒤죽박죽 섞여
왱왱거렸다.
한마디로 줄이니
너네 남편 호텔에서
낯선 여자랑 번개팅하고 있어.
바보야! 가 되었다.
멀쩡한 대낮에
칼 든 강도를 만난 것도 아닌데.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액셀을 밟는지도 모를 만큼
다리가 후들거렸다.
차는 멈추지 않고
주차장을 빙빙 돌기만 했다.
그 남자의 차는
태연하게 주차되어 있는데.
휴일이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는
나의 제안이 미안함도 없이
거절된 날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울적한 홀리데이였다.
그래서 그녀의 문자 한 통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더니.
나쁜 일은 왜? 순서도 모르고 오는지.
로비로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만 동동거렸다.
돌아보니 그 남자의 차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급하게 뒤따라 간다고 가는데.
바다로 가는 좁은 길만 이어졌다.
작은 집들이 놀림감으로 지나가는 동안
그 남자의 차는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부부는 눈이 세 개다.
멀리서 보아도 서로를 알 수 있는
눈이 하나 더 있다.
익숙함이 저장된 천리안이라 해야 할까.
그는 호텔 어디선가
내 차를 보았던 것이다.
경찰만 보면 달아나는 범죄자처럼
아내를 발견하고 도망친 남편이었다.
그 사실만으로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가슴은 차디차게 변했다.
그동안 그와 나 사이를 괴롭히던
다툼의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추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집으로 차를 몰았다.
몸은 공중부양 되고
차만 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나보다 차가 먼저
곤두박질 칠지도 모르겠다.
갓길에 잠시라도 멈추고 싶었다.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맹세코, 호랑이 잡으려고
호랑이굴에 들어가서 까지
내 맘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현장을 잡아 승진할 일도 없으니
굳이 한여름 염전밭에
생살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다만
혼란스러운 맘을 정리해야만 했다.
차도 혼란스러워 길을 잘 못 찾았는지.
정차하고 보니 갓길 밑으로 들어섰고
그 길은 역으로 이어지는
다리 밑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부쩍 남편 행적이
누군가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스치듯 지나치려는 순간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피하고 싶던 그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노라며
눈앞에 정차되어 있었다.
기막히다 못해
숨까지 멈추게 하는
액션영화 찍자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이런 현장이 다 있는지?
소 발에 쥐 잡는 것도
순간이구나 싶었다.
그의 차를 향해 걸어가면서
혼자일 거라 생각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 순간 까지도 믿었을까.
친구말대로 나는 바보였다.
그래서인지
당연한 것을 보고도 당연하지 않다고
놀라고 말았다.
그의 옆에는 친구가 지목한 여자가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창문을 내리라고 손짓을 했다.
스르륵 흘러내린 차창에서
그가 태연히 얼굴을 내밀었다.
딴에는 태연한 척하는
그의 뺨을 손바닥이 아플 만큼
후려갈겨 버렸다.
이유 막론하고 더는 참지 않겠다는
신호탄이었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뺨 맞은 남자와
그 때문에 놀란 여자는
동시에 차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그냥 앉아 있다가는
차에 불이라고 지를까 겁먹었는지
둘 다 얼굴이 노랬다.
여자는 성인이 된 자식을 둔
나이로 보였다.
갈색머리에 핫팬츠 차림이
민망해 보이는 나이라고 할까?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이런 상황에
웃음이 나오다니?
그들을 구경하듯이
쳐다보다 다리 밑만 올려다보았다.
우--웅, 쏴아- 쏴아-
빗소리, 바람소리 같은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남편은
아내를 모른다.
아내가 남편을 알고 있는 만큼.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보면서도 울지도 못하는
아내의 타고난 냉정함을
그가 알턱이 없다.
결혼을 왜 하는지도 모르는
미성숙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만큼
위험한 모험은 없다는 사실에
뼈마디가 시큰 거렸다.
어떻게 하나?
지켜보는 두 사람을
친절하고 자연스럽게
폰 카메라에 담아 주었다.
특종기사감 발견한 것처럼.
이리저리 각도를 돌려가면서
말없이 폰만 만졌더니
답답했던 걸까?
"역으로
바래다주러 가는 길이야."
그가 먼저
원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이 여자는 외지에서
남의 남편과 즐기기 위해
먼 길 온 거야로 들렸다.
잠시 후 여자가
투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우린 아이스크림만 먹고 왔어요."
흥흥, 코웃음이 나왔다.
달콤한 아이스크림 먹듯 욕망을 핥았을 뿐인데
재수 없게 들킨 거 같아로
풀이되었던 이유였다.
누가 뭐래?
그런 말을 홈런으로 받아 칠 만큼
우스운 교양 따윈 내게 없었다.
감정이 삭제된 무표정이
모독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너무 놀라 정신 나갔나? 싶은지.
그들은 흘깃거리며 내 눈치만 살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데
뭐라고 지껄이고 싶은 거야?
척하면 삼척이라는 말도 모르는가? 싶었다.
미주알 고주알 하다간 바보만 되겠다 싶어
그냥 가라고 절레절레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떠난 길 위엔
한여름이건만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어째서 다리 밑에 멈췄을까?
닿을 수 없는 거리라도
다리 하나 걸치면 길이 된다고
묵상하고 있었나?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홀가분해진 마음이었다.
풀리지 않던 미스터리 상자가
스스로 풀린 셈이라 그랬을까.
발작하듯이 툭하면 화내던 남자였다.
내가 뭘 잘못했나?
고민하게 한 돌발 행동이 많았다.
그의 분노조절 장애 원인도
알아서 줄줄 그려졌다.
세상을 살다 보니
별 이상한 일을 다 겪게 된다.
그녀가 호텔에서
먹었다는 아이스크림은
바닐라였을까?
딸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