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세이 천사 Jun 06. 2023

시간이 데리고 온 진실

모르고 살아도 알게 된다.


사람을

엑서레이로 비추면

해골이잖아.

눈으로 안 보이니

아름답고, 멋있다고 착각하며

살 수 있는 거잖아.



남편에게 문자가 왔어.

오늘은 늦을 거야.

회식, 모임, 상갓집이

늦는 이유를 대신하는 상용어였지.

그럴 땐 자정이 가까워 집으로 왔거든.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어.

평상시엔 텔레비전과

눈 맞추다 늦게 자는 남자가

오자마자 피곤 타며 침대로 곧장 가선

폰과 노닥거리더라고.

생각 없이 그의 슈트를 

옷걸이에 걸어주는 

순간이었지.

여자 향수냄새가

훅! 코를 때리더라고.

샤넬향수였지.

마릴린 몬로가 잠옷 삼았다는 루머 덕에

여자들이 마릴린 몬로가 된 듯이 선호했잖아.

남편은 결혼한 후론 

스킨향도 풍긴 적이 없었거든.

궁금해서 물었지.

슈트를 그의 코 끝에 착 붙여 주면서.

"요즘 향수 바르나 봐?'

화들짝 놀라는 눈치더라고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별 걸 다 하는 눈빛이지만 흔들리고 있었어

"그래?'

알았어, 하곤 말았어.

귀찮게 머리 복잡할까 봐

멍 때리며 티브이만 바라봤지.

갑자기 남편이 일어나 담배를 피우다

서재로 도망가기 전 까진 

정말이지, 아무 일 없었지.

찜찜하긴 했지만 들추어 봤자

구린내뿐이겠다 싶어 태연하게 말했어

"괜찮아!"

"내가 샤넬향수를 사용하잖아."


그러나,

그날, 도둑

제 발 저린다는 사실을

너무 선명하게 확인해 버렸어.

종일 피곤한 일상이었는데.

원치 않는 숙제가 생긴 바람에

잠을 뒤척이고 말았어.

샤낼향이 문제였어.

끈적한 땀내와 함께

샤넬향이 남긴 말은 이런 거였어.

바보야!

미련 곰탱이 같이 아직도

모르고 사는 거야?

맨날 이 핑계 저 핑계로 각방 쓴 게

바로 나 때문이라고.

새벽이 하얗게 다가올 동안

그 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지.


 풍문으로

들었던 외도풍경들이

필름처럼 차르르 돌고 있었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샤넬의 유령, 그 정체만큼은

몰랐으면 좋겠다 싶었지.

하지만

재수 없으면 알게 되겠지.

잘못하면 

막장드라마 주인공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꼬리가 보이는 걸 보니

제법 오랫동안 이어진 거짓말인가 봐.

흔적은 수많은 말이 되어

전보처럼 덜컹 날아들거든.

정확하게 읽지 못하는

암호 같은 말들이 많은 세상이니까.


그래서 말이야.

샤넬향의 암호가 

무엇인지 해독해 보려고 해.

사람이란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눈앞에서 확인 안 되면

모를 거라 착각하며 산다고.

자신을 속이면서도

자신이 속고 살고 있음을 모르는 

바보들 속에서 바보로 사는 느낌이야.



언젠가

나뭇가지에 걸린

달을 잡으려고

손을 뻗어 본 적이 있었지.

손에 잡힌 건 달이었을까?

나뭇가지였을까?

산다고 사는데도 이런 경우가 많아.

살아가는데 별 무리가 없다면 말이야.

차라리 모르고 살면 좋겠는데.

그런데도 알게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시간은 언제나 진실을 데리고

오는 까닭일 거야.





























이전 03화 천사도 답답하면 찾아온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