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도 답답하면 찾아온다.
우연이 운명의 발걸음으로 걸어올 때
믿고 있던 삶 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날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삼십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찾아왔다.
재테크에 무관심했지만
아파트를 팔아볼까 싶어 광고를 낸 지
일주일도 안 되었을 것이다.
"아파트를
볼 수 있을까요.?"
청년은 타지에서 왔다면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인사를 했다.
감색 정장에 하얀 와이셔츠
차림인데 어린 왕자의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첨 보는 사람이지만
낯설지 않은 친근감 때문이었을까.
아파트 정원을 지나면서
그와 눈이 마주치면 나고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느티나무를 지나 벤치를
지나는 동안 반짝이는
철쭉이며 석류나무 이파리를
청년은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황금빛 자동문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청년과 나는 공중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매일
지상과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첨으로
발견한 날이었다.
청년은
거실 창가에서 바다가 보이는 조망권에
깔끔한 구조가 맘에 든다면서 말했다.
"오늘 계약하고 싶은데요."
갑작스레 팔려나갈
아파트라니 당황스러웠다.
"소유주가 남편인데, 출근했어요."
현관문을 밀고 나오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청년의 눈치를 살폈다.
" 담주나 하면 안 될까요?"
"늦은 시간이라도 괜찮아요."
청년은 대전에서 내려왔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부연설명을 했다.
어쨌든 청년의 입장에서
오늘 계약해야 하는 타당성이 있었다.
새벽바람에 출근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민증 복사본이며 계약금 입금할
계좌번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발, 전화 좀 받으세요!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열 번을 전화해도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다음에 전화 주세요.
얼굴도 모르는 여자 목소리만
고장 난 스피커처럼 돌고 있었다.
청년은 통화 불통에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통화가 안 돼요."
스피커 폰까지 켜서 확인시켰다.
하지만, 청년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폰과 씨름하는 나를
눈에 힘까지 넣어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근심스러워 보여
죄도 없이 미안했다.
"오늘은 안될 거 같네요."
"다른 아파트를 사면 안 되나요?"
"싫습니다!"
"맘에 드는 아파트를 사야지."
전화를 안 받는 남편을 떠올리니
확! 짜증이 치밀었다.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우리 아파트가 황금성도 아닌데?"
청년은 상관없다는 듯
지상명령받은 십자군도 아니면서
후퇴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통화가 되면 바로 연락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안녕을 대신하며 돌아섰다.
살면서
가끔 겪는 일이 있다면
의도치 않게 생기는
돌발사건이다.
멀쩡하게 지나는 길에 뺨 맞는
상황을 만나면 재수 없는 날이다.
예상치 못한 함정이
바로 눈앞에 있을 때
돌부리에 걸려 피했다면
특별한 날이 되고 만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여보세요?"
"000 씨 통화가 안되어서요."
안절부절에다 이상한 불안감이
생각이라는 믹스기에서 왱왱 돌고 있었다.
"000 씨는 시방 휴가 중인데요?"
수신거부 된 그의 폰 번호대신
그가 출근한 회사 번호를 눌렀는데.
???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나도 모르게 불에 닿기라도 한 듯
후다닥
폰을 바닥에 던지고 말았다.
스마트 폰 액정 위로
검은 고양이 그림이 균열된 채로
솟았다.
어둠 속에 숨어서 번득이는
검은 눈빛과 마주친 순간 온몸의
혈관을 멈추게 하는 싸늘한 그런 느낌.
불길하면서도
틈을 주기만 하면 쥐새끼처럼
물어뜯을 것 같은 불쾌한 공포였다.
폰을 내려다보며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떠오르면 지우고 또
지우기를 반복했다.
종일 심장은
진공병 속에 갇힌 나방으로
펄렁이고 있었다.
숨이 막혀 그녀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오늘 사건 속에 숨은 그림을
그녀에게 물어본 시간은 깜깜했다.
"이런 경우를 뭐라 할까?"
그녀는 하품을 섞어
얄밉게 말했다.
"보나 마나, 바람피우는 중이네."
그녀는
난 솔직한 성격이거든 식으로
거침없이 결론을 내려 주었다.
청년의 눈빛이
눈앞으로 다가왔다가는
다시 멀어지길 반복했다.
걱정스러운 표정도.
급히 전화를 걸게 한 단호한 모습까지.
그녀가 찾아 준 바람이라는
그림은 내 눈엔 아직도 불투명했을까?
그녀의 말을 억지로 둘둘 말아 두었다가
다시 펼쳐보길 반복했다.
하루아침에
남편이 살아서라도 돌아오길 기다리는
달맞이꽃이 된 꼴이었다.
노랗고 창백한 반달을 이고
아파트 주변을
시계추가 되어 오고 가길 반복하고 있었다.
자정이 넘자, 남편이
유령이 되어 돌아올 것 같아
가슴뼈마저 시큰거렸다.
어딘가에 혼을 두고
껍데기만 올 것 같은 무서움이었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 맞다면
이런 순간, 어떤 그림을 그려야
현명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르고 있으면
내 인생이 거꾸로 쳐 박힐
위기였을까?
우연이 운명이 되어 걸어오는 동안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래알만큼이나 수많은 별들이
청년의 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바라보았던 별들이다.
지상을 살피는 천사의 눈빛으로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상활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런 말이 될 것이다.
천사도 답답하면
직접 찾아온다.
사진출처: 다음, 이미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