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묻지 않는다.
외도 대처를 위한 손자병법
남편의 외도를 알았을 때
시시콜콜 묻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변명에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을 저버린 대가로
뺨을 갈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침묵했다.
그는 미안해!라고 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뭐란 말이냐고?
물어 오길 유도하는 말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바보로 아는 것이
문제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아이처럼
믿고 속아주길 바라는 식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콩으로 메주를 만든다 해도
믿지 않는다는 강력한 신호는
침묵밖에 없었다.
만일, 폭포수처럼
분노를 쏟아 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그의 방어기제가 발동될 것이다.
무슨 소리야? 정말 피곤한 여자네?
뻔뻔한 표정으로 화를 내다 못해
회피하며 말문을 막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다.
아내의 혼란스러운 의문과
남편의 가스라이팅 심리전은.
불륜을 유지하는 비결은
거짓말이다.
그는
거짓말 탐지기도
헷갈리게 할 만큼
숙련된 거짓말쟁이다.
적어도 아내 앞에선 그렇다.
천연덕스럽게 속여 온 세월이
묻지 않아도 말해 준다.
슬픈 경험자였다면 알 것이다.
괜히 물었다가 갑질당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차라리
상내방이 질문하게 해야 한다.
불륜이 들통났는데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 당신에게
저 사람 관심도 미련도 없는 건가?
복잡한 감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침묵처럼 우아하게
상대방을 무시하는 형벌도 없다.
본심이 드러나지 않아서 더 그렇다.
그리고 그날부터 애완견처럼
남편을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퇴근 시간에 맞춰
외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내가 없는 집안으로 그가
들어서게 하라.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지면서 물어 올 것이다.
어딜 그렇게?
화를 내고 소리를 치든 무시하라.
당신에게 꼬리 치며 궁금해서
끙끙거릴 그날까지.
남편은 착각하고 있다.
아내가 된 여자는
사랑의 열정대신 의무와 헌신의 에너지로 산다고.
아내의 열정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가마솥 개구리가 되었을 뿐이다.
남편이 배신의 얼굴을 드러낼 땐
나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이대로 사는 게 맞나?
자신에게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
남편 어깨에 뽕 넣어야
잘 산다는 의존심부터 버려야 한다.
차라리
나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동안
해답을 발견할 거라 믿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편하고 안정감을 주는
아내보다 긴장감과 설렘으로
욕망지수를 상승시키는 대상이
좋았던 것뿐이다.
욕망의 눈에 보이는 건 쾌감을
자극하는 상간녀의 몸짓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삼류소설 같은 질문 따윈 하지 않는다.
불륜은 이유가 없다.
마누라는
재미가 없었다고
말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면
묻지 않는 것이 그나마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아내 역시 하던 대로 하는 남편의
방식이 지겹긴 마찬가지다.
당연히 성적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심드렁해지는
남녀관계에 로망을 가질 만큼
어리석지 않았을 뿐이다.
불륜은
쾌락이라는 불꽃으로 뛰어든
불나방의 춤일 뿐이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을 물어보는 허망한 질문은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침묵하는 동안 복잡했던 삶이
분리 수거되고 정리되기도 한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지도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할 것이다.
감정은 쏟아낼수록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을 배웠던 탓이다.
오해하지 마라.
오만 불손한 탈선을 이해하려고
참았던 것은 아니다.
그를 믿었던 모든 시간을
쓰레기 통으로 던져버리는
포지션을 취한 것이다.
버려야만
무엇이든 시작될 수 있으니까.
내겐 그랬다. 그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봐야
비로소 짚어보는 무지함이 부끄러워
더 침묵했는지도 모른다.
질문도 타당한 이유 앞에서
던질 수 있는 배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