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해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

by 레몬 브리

SNS를 통해 독서모임을 찾았다.

그들과 인연이 닿았다. 평균 나이 삼십 대.

내가 들어가며 평균 나이가 올라갔다.

그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나와 다른, 나보다 젊은.

첫 책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체성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진실과 거짓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커버의 카피 문구가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와 닿는다.




제1부. 비밀노트

쌍둥이 우리들의 이야기 (4세~15세)


전쟁이 한창인 어느 나라. 부모는 쌍둥이 형제를 시골 외할머니 집에 맡긴다.

외할머니는 무뚝뚝하고 냉정한 인물. 두 형제는 이 가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도, 연민도 지우며 자신들만의 ‘훈련’을 시작한다.

그들은 하루하루의 경험을 ‘비밀 노트’에 기록하며, 주관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배제하며 점점 비인간적인 존재로 변해간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할머니는 마녀와 비슷하다. —>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 부른다.
당번병은 친절하다. —> 당번병은 우리에게 모포를 가져다주었다.
호두를 좋아한다. —> 호두를 많이 먹는다.


인간은 자기모순에 잘 빠진다. 무엇이 진실인지, 진실이 아닌지

그럼 나의 생각과 나의 느낌은 진실이 아닌가? 그렇게 치자면 '호두를 많이 먹는다'는 표현도 너무 주관적인 표현일 수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많은 것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호두를 많이 먹는다'를 호두를 몇 개 먹는다라고 써야 한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이 매우 모호하다’ 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일기에서 충실한 묘사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충실한 묘사도 결국엔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 왜냐면 내가 기술하는 것이니까.

그들이 하는 공부 중에 장님과 귀머거리 연습이 있다.

그들은 눈을 가리지 않아도, 귀를 막지 않아도 시선을 자신 내부로 돌리고, 온갖 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는 연습을 한다. 그들은 장님이 아니어도 귀머거리가 아니어도 멀쩡한 사람도 장님이 되기도, 귀머거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는 것에 집중하거나 듣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우린 멀쩡하다고 하지만 실은 장님이고 귀머거리이다.

그리고 그들은 단식연습, 잔혹연습도 한다.

그 쌍둥이 아이들은 전쟁 중에 세상 속 인간의 많은 날 것에 접한다.

어쩌면 전쟁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전쟁 중에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죄가 있는 사람이 죄를 묻는다. 그리고 협박한다.

그렇게 신부는 매주 돈을 전달하게 된다. 두 소년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자비로 포장하기 위해서.

전쟁 중에는 인간의 욕구가 너울 뛰듯 작동한다.

더 인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동물다워진다.

전쟁은 어쩌면 인간으로 버티기에는 버겁다.

그래서 다들 동물이 된다. 남자고, 여자고, 아이들이고.

소년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통, 더위, 추위, 배고픔 등을 이겨내기 위해서 훈련하고 연습한다.

인간이 욕망에 충실해지면 기괴해진다. 장교가 그랬고, 하녀가 그랬고, 언청이가 그랬고 신부가 그랬다.

가난뱅이를 문밖으로 내쫓은 부자의 감사기도

“주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주님의 은혜는 무엇일까?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주신 은혜?

고통스럽고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은가?

아무것도 잊지 않는 것이 좋은가?

우리가 기억하든 잊어버리든, 어쨌든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니까.


이렇게 모든 것을 함께 하던 씽둥이 소년들은

15살이 되던 때에,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고, 루카스는 남는다.




제2부. 타인의 증거

15세~55세의 루카스의 이야기


전편의 결말 이후, 쌍둥이 중 루카스만 살아남은 듯한 이야기로 시작.

루카스, 야스민, 그녀의 아들 마티아스가 등장한다. 야스민이 사라지고 루카스는 도시로 나와 마티아스를 돌보며 살아간다.


서점을 하는 빅토르의 말.

내가 젊은 시절에 구상했던 내 책 말이야. 나는 작가가 되어서 책을 쓰고 싶었거든. 그건 내 젊은 시절의 꿈이었어. 누나는 나를 믿었고, 나도 나 자신을 믿었는데, 결국 나는 책을 쓰겠다던 꿈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어. 나는 이제 쉰 살밖에 안 됐어. 내가 담배와 술을, 그래, 술과 담배를 끊는다면,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을 거야. 몇 권 더 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단 한 권이 될 거야.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가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중략)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힐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네.

이런 빅토르의 반전이 있다.

그와 누나 사이에 있었던 일, 그리고 상처. ‘누나가 주도했던 어린 시절의 섹스 놀이‘라는 표현으로 기술된다. 누나와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의존적인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그는 그의 누나를 목 졸라 죽이고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의 중독(술과 담배). 그의 꿈. 누나에게로 다시 돌아간 그의 선택.

자신을 좀 더 지긋이 오래 들여다보고 자신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었다. 들여다보기가 고통스럽다고 덮어버리면 언젠가는 그 일은 수면 위로 떠올라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 자신이 그 일에 잠식 당해 버리는 일 또한 생긴다. 빅토르가 그랬다. 그가 자신의 상처를 정확하게 볼 수 있었더라면, 서점과 집을 팔아 누나에게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둘은 함께 지내기에는 빅토르 그의 상처가 깊었다. 함께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상처를 자극했고, 그래서 그를 망가뜨렸다.


또 다른 반전, 시체로 발견된 야스민과 마티아스의 죽음.

마티아스는 무슨 생각으로 자기 삶을 마감했을까? 인간들의 사랑은 서로 엇갈린다. 때로는 집착한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분명하지만, 그 누군가의 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나의 것과는 또 다른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지 못하면 지옥이 된다. 마티아스가 그랬다. 그 아이는 성숙했지만, 일곱 살 된 아이에 불과했다. 자신 안에 너무 깊게 자란 ’사랑‘이란 감정을 잘 소화해 내지 못하는 그런 아이에 불과 했다. ‘인간의 삶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 선택의 연속이다’라고 말한 이가 있다. 아마도 폴 샤르트르? 그 연속적인 선택에 다양한 모양의 죽음의 스펙트럼이 있다.


서점 주인 빅토르, 야스민과 마티아스 그리고 루카스, 이들 모두 사랑과 폭력의 경계가 무너져 내렸다. 마티아스는 루카스를 사랑했지만, 사랑받지 못함으로 죽음을 택한다. 그랬을 것으로 짐작된다. 야스민은 오랫동안 동경하던 인물에게 기억조차 시체로 발견된다. 서점 주인 빅토르는 함께 사는 누나를 죽인다. 이 모든 사랑은 정상적인 방식으로 도달하지 못하고 죽음, 부정, 침묵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너무 기괴하고 애처롭다. 분명 아름다운 감정이 추하게 무너져 내린다. 이건 마치 현실과 환상, 진실과 거짓이 얽힌 그로테스크한 악몽 같은 세계이다.

야스민이 사라지고, 마티아스가 죽은 후에도, 루카스는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 이야기는 진실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들이 존재했었다는 '증명'을 남기고자.

아고타는 말한다.

사랑은 사라져도, 이야기는 남는다. 너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너를 쓴다. 그래서 나는 살아남는다.




제3부. 50년간의 고독

국경을 넘은 루카스, 50이 넘어 돌아온 클라우스로 돌아오다


국경을 넘어갔던 클라우스가 등장한다.

여기서 소년은 조서에 적힌 자신의 세 가지 거짓말에 서명을 한다.

하나,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실은 그의 아버지가 아니다)

둘,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셋,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고 루카스이다)

이렇게 해서 쌍둥이 형제 중 루카스에 의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세 가지 거짓말이 만들어진다.


루카스는 5살에 재활원에 들어갔고, 15살에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35년을 그곳에서 지낸다.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어쨌든 서류상으로 58살이 된 시점에 다시 국경을 넘어 자기가 살던 곳으로 오게 된다

쌍둥이 동생 클라우스를 찾아서.


비밀노트에서 쌍둥이 소년들의 이야기, 그리고 국경을 넘은 루카스.

타인의 증거에서 국경을 넘지 않은 클라우스의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은 허구이다.

'50년의 고독'에서 모든 퍼즐들이 맞춰진다.

실제로 이 쌍둥이 형제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드러나게 된다.

아버지, 어머니, 쌍둥이 형제 루카스와 클라우스

행복한 듯 보였던 이 가족에게 총기사고가 일어난다.

아버지는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어머니에게 사랑하지만 자신은 떠난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총으로 어머니가 남편을 향해 두발을 쏜다. 아버지는 사망했지만, 빗나간 총에 루카스는 심한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회복되었지만 재활원으로, 어머니는 정신병동으로 가게 된다.

동생 클라우스는 혼자 남겨진다. 안토니아라는 여자의 돌봄을 받게 된다. 이 여자는 아버지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동생 사라를 안토니아와 같이 양육한다. 성장해서 이복동생인 사라와 사랑에 빠지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멀리하게 된다. 결국 클라우스는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를 돌보며 같이 살게 된다.

그렇게 두 쌍둥이는 나이를 먹고 국경을 건넜던 형 루카스는 그 비극적인 사건으로 헤어진 후 50년 만에 가족을 찾아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쌍둥이 형 루카스의 존재를 부정한다. 결국 형인 루카스는 그에게 자신의 미완성 원고를 남겨두고 떠난다. 이틀 후에 그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원대로 부모님 중 돌아가신 아버지 곁에 묻혔다.


루카스는 국경을 넘고, 언어를 배우고, 다른 세계에서 다시 태어났지만,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에 대한 내면의 결핍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그가 클라우스를 찾아간 건 단순한 가족의 재회가 아니라,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을 찾아간 것이었다. 즉, 자기 존재의 증인을 찾으러 간 것이다. 클라우스의 "나는 너를 모른다"는 말은 루카스에게 있어 존재 삭제의 선고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순간, 루카스도 마티아스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실제로 사라졌다. 자살을 택했다.

왜, 동생 클라우스는 형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클라우스는 자신의 과거에서 형은 고통과 죄책감을 상징한다고 받아들였다. 형을 기억하면 죄책감으로 자신이 무너졌다. 루카스를 인정하면 현재의 자신의 정체성 붕괴를 가져올 것이 두려워 자신의 자아보호를 위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형에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루카스 형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질투의 감정도 있었다. 그리고 형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감정도 함께 작용했을 수 있다. 그래서 형을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내는 존재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추측해 본다. 하지만 결국 그도 형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차에 몸을 던져 끝을 내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클라우스의 형에 대한 부정은 여러 복잡한 감정이 합쳐져 내려진 결론이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기억, 자아, 존재에 대한 무자비한 질문을 던진다. 쌍둥이 형제의 마지막 재회에서, 형 루카스는 동생 클라우스를 알아보지만, 클라우스는 형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알면서 모르는 척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재회 실패가 아니다. 이는 형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지켜내려는 한 인간의 마지막 선택이다.


클라우스는 형을 기억한다. 그의 목소리, 눈빛, 손짓, 모든 것이 과거의 루카스임을 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부정한다. 왜? 그것은 형 루카스가 단지 한 사람의 형제 이상이기 때문이다. 루카스는 그가 버리고 떠났던 ‘진실’, ‘상처’, ‘죄책감’이 모두 응축된 존재이다. 다시 말해, 루카스를 인정하는 순간 클라우스는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거짓된 정체성을 버려야 하며, 기억의 지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랑이 때대로 파괴적인 감정이 되는 것처럼, 이런 의미에서 기억은 때때로 이보다 더 파괴적인 감정이 되기도 한다. 클라우스가 루카스를 거부한 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다시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형과의 추억이 아닌, 형의 ‘부재’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야만 했고, 그 대가로 그는 진실을 포기한다.


'50년간의 고독'에서 알게 되는 진실. 이 가족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어느 한 사건을 계기로 각자의 고독에 갇혀 산다. 기억을 찾으려 하는 자. 기억을 지우고 잊으려 애쓰는 자. 자신의 존재를 위해 쌍둥이 형의 존재를 끝내 부인한다. 결국, 기억을 택했던 형 루카스는 스스로 파멸의 길을 택한다. 클라우스 또한 기억을 택했다면, 그 둘은 함께 살아남았을까? 클라우스가 선택한 방식, 진실을 ‘모른다’고 말하며, 형의 존재를 잊음으로써 살아남긴 했지만, 그도 결국 형과 똑같은 방식을 택하게 될거라는 것을 암시한다.

나는 그가 선택한 생존방식, 기억을 외면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그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거짓말이었다고 변명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고통의 회피는 생존을 위한 좋은 전략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지점이다.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알게 되는 이야기.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어떻게 죽음을 부르기도 하는지 알게 되는 이야기.

존재하고 싶다는 갈망이 얼마나 기괴하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지 알게 되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이런 피하고 싶은 것들을 숨기지 않고, 끝까지 파헤친다. 그래서 아름답고 슬픈 동시에, 섬뜩하고 불편한 이야기이다.

마티아스는 사랑받고 싶어서, 루카스는 기억되고 싶어서 죽음을 선택했다. 죽음으로 가는 다 각자의 선택이긴 하지만.



※ 이 글은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다음 편은 9월 넷째 주 수요일 발행 예정입니다.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