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함께 다시 읽는 사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by 레몬 브리

스무 살의 기억


스무 살 무렵, 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처음 읽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폴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녀는 시몽의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다시 바람둥이 로제에게 돌아가는 걸까.

그 시절의 나는 사랑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구원이라 믿었고 절대가치였다. 그 열정과 뜨거움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폴의 선택이 답답하고, 어쩐지 비겁하게 느껴졌다.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기


40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그 때 스무살의 나와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읽고 있었다. 젊은 날, 내가 구원이라고 믿었던 사랑은 지금 돌이켜보면 신기루와도 같은 것이었다. 찬란하지만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그런 것이었다. 40년이란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은, 사랑을 지켜주는 힘은 순간의 찬란한 열정이 아니라 오랜 일상을 함께 버틸 수 있는 인내와 책임감,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사강은 겨우 스물네 살의 나이에 이 이야기를 썼다. 그 젊은 나이에 이미 사랑의 덧없음과 불안정함을 알아버린 듯 하다. 그래서 다시 이 책을 읽는 지금의 나로서는 그저 그녀가 놀라울 다름이다.


나는 주인공들의 이름에서 잠시 멈칫한다. 나에게 로제는 여자 이름처럼, 폴은 남자 이름처럼 들렸다. 하지만 여기서 로제는 젊은 여인과 주말여행을 다니느라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는 바람둥이 중년 남자였고, 폴은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중년의 여자였다.

잠시 든 생각은, 사강은 주인공들의 이름에서 아마 의도적으로 성별의 전형적 이미지를 흔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폴의 이름은 아주 단단한 울림으로 다가왔고, 동시에 그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들렸다.


시몽은 젊고 진지했다. 그리고 수습변호사인 그는 피고인에게 말하듯 폴을 향해 열정적으로 고백한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라고. 장난스러운 어조였지만, 자신의 사랑에 대한 폴의 회피를 찌르는 말이었다. 파고드는 젊은 남자, 방어하려는 중년의 여자.

시몽의 사랑은 진지했지만, 동시에 불안정했다. 사랑 때문에 술에 의존하며 불안을 달래는 그는 폴에게 어느새 연인이 아니라 모성의 대상이 되어간다. 시몽, 그는 요동치는 자기감정과 욕구를 위해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극단적으로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가끔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는 다시 일로 돌아갔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여전히 자기 삶을 감당해 내기에는 버거운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로제는 젊은 여자와 바람피우느라 폴에게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어내는 일로 일관했다. 그런 그는 그녀에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심지어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조차 그녀에게는 구원처럼 다가왔다.

사랑은 종종 방치와 밀착 사이에서 흔들린다. 방치된 관계는 공허하고, 밀착된 관계는 숨 막힌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행복을 찾아내려 애쓴다.

사랑의 열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것이 덧없고 불안정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에 열광하고, 그런 사랑을 갈망한다.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그렇게 인간이 갈망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최근에 본 영화 〈라이프 리스트〉를 떠올린다. 영화 속 주인공이 친구와 나눈 문자, 진정한 사랑을 알아보는 네 가지 질문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서다.
첫째, 그는 친절한가?
둘째, 내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가?
셋째, 그는 나를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도와주는가?
넷째, 그를 내 아이의 아버지로 상상할 수 있는가?


진정한 사랑은 결국 순간의 반짝임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인내하고 책임지는 힘이라는 걸 일깨우는 질문들이었다.

이 질문들을 폴의 연인들에게 던져보면, 로제도 시몽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결국 폴이 선택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이었다,


사랑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는 나에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스무 살의 나는 시몽을 동경하고 사랑했다. 나도 그런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40년이 지나서, 시몽을 사랑했던 나는 폴을 이해한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 이 책은 다시 다른 사랑의 시선으로 내 앞에 다가올 수도 있다.

홀로서기가 된 독립적인 사람만이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홀로서기가 된 사람은 상대에게 사랑이란 자기감정을 전적으로 맡기지 않으며,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타인의 감정에 의존적이 된다는 것은 늘 불안을 가져온다. 상대가 나에게 어떻게 나올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내 마음 나도 모를 때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러니 상대의 세밀한 감정에 대해서 어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사랑해서 서로 채워주고 싶지만, 그렇게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랑하면 서로를 채워주고 싶지만, 끝내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다.

결국, 사랑은 서로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음을 함께 견디는 일이 아닐까.


나와 함께 이 무겁고 쓸쓸한 사랑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왜 사강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시몽은 어떤 의도로 폴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연주회에 초대했을까?

그것은 단순한 음악적 취향을 묻기 위함은 아니었던 것 같다. 브람스의 음악은 낭만주의의 끝자락에서, 깊은 서정과 쓸쓸함을 품고 있다. 슈만의 친구이지만,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사랑했지만, 끝내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브람스. 그 사랑으로 삶 자체가 불완전했지만 깊은 사랑으로 무겁고 쓸쓸한 감정을 음악에 담아냈다. 그런 의미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시몽의 질문은 곧 “당신은 진지하고 무겁고, 어쩌면 쓸쓸한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요?”라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공교롭게도 폴과 시몽처럼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의 나이 차이도 14살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시몽 자신이 이런 뜻을 담아 브람스 연주회에 폴을 초대했다고 가정해본다. 그렇다면, 그는 그녀를 그의 사랑으로 초대하긴 했지만, 이 사랑을 서로가, 아니 그가 끝까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작가의 의도가 들어간 제목이 시사하는 바 아니었을까.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