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생각하는 행복 |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
어른이 된 나의 목표는, 아니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불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아프지 않고 매일을 별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란다. (중략) 행복이 더 많아진 삶이 아니라 불행이 줄어든 삶이다.
젊을 때의 행복은 보통 추가되는 것이었다. 더 가지는 것. 더 이루는 것. 더 사랑받는 것.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행복은 빠지는 것이 된다. 과한 기대가 빠지고, 쓸데없는 비교가 빠지고, 나를 깎아내리던 목소리가 조금씩 빠지는 것. 그렇게 빠지고 나면 불행이 줄어든다. 기쁨이 폭발하는 상태는 아니지만 버틸 필요가 없는 하루가 된다. 그게 어른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기쁨, 설렘, 사랑, 성취 같은 감정의 파동은 짧고 강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다.
강하고 자극적으로 느끼지 않았지만,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것, 이 또한 행복이다. 어른이 느끼는 행복은 이것에 더 가깝다.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았고, 자기 혐오에 하루를 쓰지 않았고, 후회 때문에 잠을 설칠 필요가 없는 상태. 이런 상태로 밤에 눈을 감는 것.
불행이 줄어든 삶은 행복일까? 불행이 줄어든 삶은 행복의 바닥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 위에 아주 작은 기쁨 하나만 올라와도 그건 충분히 '행복한 삶'이 된다. 행복을 매일 느껴야 한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대부분의 날들을 실패로 처리해 버린다. 그러나 불행하지 않았던 날을 성공한 하루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행복이 된다. 이렇게 해서 불행이 줄어든다. 불행이 줄어든 삶은 눈부시지 않다. 사진으로 남길 만큼 반짝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삶에는 자기혐오가 줄고, 쓸데없는 죄책감이 줄고, 불필요한 기대가 조금씩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조용하지만 단단한 여백이 남는다.
사람이란 의외로 행복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 불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충분한 만족감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행복한가요?
이 질문을 안부처럼 가볍게 던지지만, 다들 이 물음 앞에서 멈칫한다. 사실은 대답하기 꽤 어려워하는 질문이다.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행복한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행복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행복하지 않으면 어딘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고, 노력하지 않은 것 같고,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곧바로 불행하다는 뜻일까.
행복은 감정이지 기준이나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행복은 도달해야 할 상태, 증명해야 할 결과로 잘못 받아들여졌다. 행복한 관계, 행복한 직업, 행복한 삶. 그 틀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못하면 스스로를 실패자로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들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불행 그 자체가 아니라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인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 크고, 너무 선명하다. 그래서 그 안에 자신을 넣으려 할수록 자신의 삶의 결이 망가진다. 각자의 속도, 각자의 무게, 각자의 사정은 모두 다른데, 행복이라는 틀은 항상 하나이다. 이런 식으로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은 생각보다 큰 자유를 가져다준다.
행복은 꼭 되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가끔 스쳐가는 감정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정이 없다고 해서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돈은 내 인생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너무 강한 빛깔로 빛나 다른 모든 걸 다 어둡게 만들었다. 추측건대 이런 결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야, 행복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거야."
20대에서 40대 사이의 나라면 이런 물음에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 시절의 삶은 늘 빠듯했고, 돈은 단순한 수난이 아니라 불안을 잠시라도 밀어내는 힘이었다. 돈이 있으면 불안이 줄고 선택지가 늘고, 나를 증명할 기회가 생기고, 세상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때의 돈은 행복이라기보다 불행을 막아주는 방패에 가까웠다.
60대에 들어선 지금, 나는 돈이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이 조금 더 분명하게 보인다. 돈이 있으면 집을 살 수 있고, 여행을 갈 수 있고, 좋은 가구를 들일 수 있고, 비싼 물건을 손에 쥘 수도 있다. 삶은 분명 더 편리해지고, 경험치는 높아진다. 하지만 그럼 경험들이 반드시 행복한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좋은 호텔방에서 마음은 공허할 수 있고, 비싼 식탁 앞에서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돈은 행복을 직접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행복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는 준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감각이고 돈은 그 감각을 방해하는 것들을 조금 치워주는 역할에 가깝다.
행복을 수시로 느끼는 삶도 좋지만, 불행에 덜 시달리는 삶을 조금 더 신뢰한다. 이것이 어른이 되어가며 내가 선택한 방식의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이 조용한 하루들은 우리 인생의 공백이 아닌, 여백이니까
행복은 무엇을 더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에 덜 시달리느냐에 더 가까운 문제이다. 사랑을 더 많이 받지 않아도, 외로움에 덜 휘둘리며 행복해진다. 성공하지 않아도 패배감에 짓눌리지 않으면 살 만해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기혐오에서 한 발 떨어져 있으면 충분해진다.
젊었을 때 내가 생각하던 행복은 언제나 크고 분명했다. 기쁨은 눈에 보여야 했고, 성취는 증명되어야 했으며, 행복은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형태여야 했다. 그래서 행복은 늘 2% 부족했고, 그 부족함은 나의 실패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행복에 대해 묻는 방식이 달라졌다.
행복을 좇느라 나 자신을 몰아붙이던 시간보다는 불행을 줄이기 위해 조금 더 나에게 관대해진 지금이 훨씬 숨 쉬기가 편하다는 사실이다.
나를 먹고 보니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재미가 들끓는 삶보다 이 조용함이 행복이다. 들끓는 감정의 엑스터시에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조용함과 감사한 마음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 이렇게 젊은이는 어른이 된다. 삶의 과정을 성공과 실패로 양분화시키지 않는 사람. 그래서 실패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성공에는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는 사람. 그러다 보면, 매 순간이 행복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른은 항상 조용하게 행복할 수 있다.
이제 널 뛰는 흥분된 감정과 성취감을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불행의 감정이 내게 밀려오지 않도록 감정을 조절하며, 모든 것이 조용한 이 순간, 이것이 행복이다. 성공, 행복. 실패, 불행. 이것은 누가 만들어 낸 프레임인가. 젊은 날 이 프레임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며, 나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을 행복이라 느끼지 못했다. 성공 뒤 잠깐 행복, 그리고 다시 불행의 감정이 여지없이 찾아든다. 인생은 성공만으로 일관될 수 없으니까. 성공과 실패는 인생의 이벤트이며 이것을 행복과 불행으로 구분 짓는 것은 자신을 헤어 나올 수 없는 불행에 감금시키는 행위이다.
결국 나에게 행복이란 편안함, 안도감, 고요함, 감사함과 같은 유사한 감정들 아닐까. 이런 감정들은 나만의 삶을 살아낼 때 오는 것들이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얻게 되는 우월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만의 삶,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자기 방식으로 자기 삶을 구축해갈 때, 인간은 행복한 상태에 있지 않을까. 불행할 만한 상황들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편안함과 감사함을 찾아내는 것. 그러면 더 이상 행복과 불행은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널뛰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의 말처럼, 나는 이 조용한 상태를 이제는 기꺼이 행복이라 부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