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5. 혹은 불륜이라는

5. 혹은 불륜이라는

by lee

5.

“야! 너 26일에 시간 비워놔!”

지희였다. ,여보세요, 를 듣기도 전 그녀는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목적은 분명했다. 다음 동창회에 반드시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동창회. 십여 년 전 나를 기억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숨어있으면 더 궁금해해.”


그것이 ,반드시. 라는 부사를 붙여가며 참석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지희라면, 나에게 불필요한 불편함을 강요할 사람은 아니었다. 지희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소문’일 것이다.

소문. 암암리에 전해지는 소식은 사실보다 커져 있기도 하고, 사실과 전혀 다르기도 하다. ‘이혼했다더라’ 가 ‘이혼당했다더라’ 가 되어 있을 수도, ‘00가 ~~해서 이혼을 당했다더라’ 로 확장되어 있을 수도. 그것마저 지나가는 바람일 것이라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지희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나보다 더 화가 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이혼을,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 이유를,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동창회는 어느 맥주 전문점이었다. 창문 너머로 장식인지 실제 사용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큰 구리케틀이 보였다.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을 서성거렸다. 꾸민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원래 입던 옷들 중 깨끗한 옷을 왔는데 하필이면 블라우스 손목 단추 위 올이 풀려 있었다. 내키지 않던 발걸음이었다.


‘돌아갈까……’


도망치고 싶었다. 블라우스에게 핑계를 돌리고 싶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이유를.


“지영이 아니니?”


뒤에서 부른 소리였다.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너 정말 지영이니?”


늘 장난이 넘치던, 늘 스포츠 머리를 하던 선배는 한쪽 가르마 뒤로 머리 결을 깔끔하게 넘긴 헤어스타일로 바뀌어 있었다. 반가움보다 앞선 것은 안도감이었다.


‘나를 알아보는구나.’


내가 너무 많이 달라진 것을 아닐까,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선배에게 이끌려 들어간 내부엔 많은 인원들이 저마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낯익은 얼굴과 처음 보는 얼굴까지. 반기는 사람도, 안면만 있는 사람도,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와 본 동창회는 두려움만큼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다지 나에게 관심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목받을까 두려웠던 걱정이 쑥스럽게 느껴졌다. 정확히 나는 그 자리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드라마 속 세상의 중심이고 타인들은 주인공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나는 어쩌면 그런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모두 나의 불운과 불행에 관심 가질 것이라는. 그것은 내 인생에 나 혼자만이 주인공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어린 왕자가 자신만의 별에서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타인이 없는 삶에서 십여 년간 나는 주인공이었다. 그것이 일인극이었을 뿐.

군중 속에서도 느껴지는 눈빛이 있었다. 눈길이 따라간 곳엔 그가 있었다. 수혁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동안 너 소식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막연한 회상 속의 수혁이 현실에 있었다. 시간 속에 스물여섯의 청년이었던 수혁은 상상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부드러운 진갈색 머리카락의 뿌리 부분엔 군데군데 하얀 흰머리가 있었고, 웃을 때마다 접히던 눈가엔 작은 주름들이 져있었다. 이제 수혁은 티셔츠 차림도 아니었고, 청바지를 입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검은 뿔테 안경과 안경 너머 잔잔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가로등 불빛이 부서지던 도서관 계단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그대로.


“결혼하고 외국에 있다더니.”


먼저 말을 꺼낸 것은 그였다.


“네, 독일에 있었어요.”

“독일.”


그가 짧게 되풀이했다. 그와 만날 때, 수혁은 독일에 가고 싶어했었다. 필요 없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취미였지만, 독일어는 꽤 오래, 깊이 공부하기도 했었다. 수혁이 가고 싶던 독일에, 내가 살다 왔구나.


“어울린다, 너랑.”


수혁이 말했다.


‘어울린다?’


잠시 혼란했다. 어울린다는 건 무슨 뜻일까. 독일이라는 나라를 두고 한 말인지, 외국 살이가 어울린다는 뜻인지.


“그래,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언제 다시 돌아가?”


대답을 고민했다. 차라리 잠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번이라도 수혁을 마주쳤었다면. 그랬다면 이 대답이 조금 더 쉬웠을 텐데.


“안 돌아가요.”

“완전히 들어온 거야? 가족이랑?”

“혼자 왔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이혼. 이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시대는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다른 사람들의 일이라면 함께해서 불행한 것보다 혼자 인생을 찾으라 조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혼을 결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나를 위로했다. , 요즘 세상에 이혼은 흠도 아니다, ,다섯 집 중에 한 집은 이혼이더라, ,이혼하고 잘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 하지만 부끄러웠다. 예전 남자친구 앞에서 이혼을 말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싶었지만.


“그랬구나.”


놀랬기 때문일까. 수혁은 말이 짧았다.


“힘들었겠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그것은 상투적인 위로였지만,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라는 것을, 시간이 흘렀지만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안 맞았던 사람이었어요. 오히려 시간을 끌었던 게 아까워요.”

“그건 좀 의외네.”

“넌 맺고 끝는 게 분명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말에 뼈가 느껴졌다.


“선배는요? 결혼했죠?”

“응.”

“아기 있어요?”

“응. 일곱 살”

“사진 있어요?”


수혁 같은 사람이라면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그의 무심한 친절함들이 생각났다. 동시에 그의 단란한 가정 역시 상상되었다. ,수혁이라면 좋은 가정을 가졌을 것이다, 라고.

그의 와이프가 궁금했다. 그의 아이 사진을 물으며 혹시 가족사진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역시 없지는 않았다.


“다음에. 다음에 보여줄게. 다른 사람들하고도 인사 좀 해. 정말 오랜만인데.”


그가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며 말했다. 맥주에 소주 한 잔을 타 마시던 그의 습관이 그대로인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제 관심을 놓아줄 때였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잠시 내 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는 참 그대로구나.”


악수 대신 그가 말했다. 수혁이 자리를 떠난 뒤, 귀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유를 고민할 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이 자리를 비운다 해도 표가 나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신은 힐에 발 뒷꿈치가 욱신거렸다. 열기가 아직 남은 아스팔트의 뜨뜻한 기운이 얇은 바닥으로 느껴졌다. 가느다란 힐로 바닥을 디딜 때마다 넘어지지 않으려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또각또각 즈려 내 밟는 발자국마다 걷는다는 것이, 두 발을 땅에 디딘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잠시만.”


등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목소리였다.


“이야기 좀 하자.”


호프 집 밖 어둑진 골목에 그가 마주 서 있있다. 그에게서 여전한 옅은 담배 냄새가 풍겼다. 그는 담배갑을 꺼냈다. 우리가 만나던 그 때도 그는 담배를 폈었다. 모든 면에서 어른 같았던 그에게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잔소리가 바로 담배였다.


“저도 주세요.”


수혁은 잠시 멈칫 하는 듯했다. 곧 담뱃갑에서 한 개피를 꺼내 건냈다. 담배를 입에 물자 수혁이 불을 붙여주었다.


“언제부터 폈니?”

“결혼하고부터요.”


아스팔트의 열기와 더해진 담배연기는 눅눅하고 씁쓸했다. 수혁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깊은 담배 연기가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질문의 요지가 무엇일까?


‘설마 당신을 보려고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를 볼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가 조금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혹시 그렇다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수혁은 더 말이 없었다. 바닥에 담배꽁초를 떨구고 구둣발로 비벼 밟았다. 그의 시선이 담배꽁초에서 내 구두로 옮겨졌다. 구두에서 얇은 검은 스타킹을 신은 발목으로, 발목에서 무릎으로, 시선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그 망설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제 나는 미숙한 이십대가 아니었기에.

그에게 안겨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 사람은 가정이 있어. 아내가 있는 남편이고, 일곱 살 난 아이의 아빠야.’


낮은 목소리도, 웃을 때 슬쩍 올리는 입꼬리도, 셔츠에 풍겨오는 담배냄새와 섞인 채취도 그대로 같지만,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쉽게 흔들어서는 안되는.


“시간이 늦었어요.”


애써 꺼낸 말이었다. 손가락 끝에 타들어간 담배의 화기가 느껴졌다. 나는 담배를 비비어 끄고 그의 옆을 지났다.

그때였다. 수혁이 손목을 잡은 것은. 그가 잡은 내 손목의 박동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전달되었다. 몸은 말보다 정직하다. 나의 몸은 그에게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일들은 계획하지 않았지만, 예상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호프집 근처엔 굳이 찾지 않아도 모텔들이 즐비해 있었다. 아마도 술-모텔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싸구려 감정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비참하진 않았다. 수혁에게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것도 충동을 이기지는 못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났던 세 계절의 키스를 합친 것보다 더욱 거칠게 서로의 입술을 탐닉했다. 그것 역시 그의 달라진 점이었다.


“왜 돌아온 거야. 여긴 왜 온 거야.”


나를 끌어안고 있는 수혁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를 안지 않냐는 질문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그는, 이제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내 뒤통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내 머리카락을 쥐었다. 살짝 머리가 젖혀질 정도의 세기였다. 목이 젖혀지며 벌어진 입안으로 그의 혀가 들어왔다. 내뿜는 뜨거운 입김이 입술과 귀와 목을 타고 내려갔다.

,네가 너무 소중해, 라며 만지는 것도 어려워하던 그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어쩌면 그저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밤을 함께 보낸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이것이 그가 사랑하는 방식인지도.

몸을 누르는 그의 무게를 받으며 첫 경험이 떠올랐다. 버리듯 망쳐버리고 싶었던 첫 경험이. 지금 이 순간이, 또다시 무언가를 망쳐버리고 싶은 자학은 아닌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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