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17. 다시, 겨울

17.다시, 겨울

by lee

17.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예전 그대로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을 뿐.

정 선생님과 함께 갔었던 전시회장을 다시 찾았다. 입구에서 한동안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의 발걸음과 조용한 대화 소리가 유리 벽에 부딪혀 흩어졌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공기.

모네의 전시관에 들어섰다.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공간 속에서 숨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수련 연작.

압도당할 만큼 한 벽면을 길게 채우고 있는 수면 위 찬란한 연꽃 조각들.

그것은 창을 닮아있었다. 지난 겨울 복지관에서 바라본 창. 그 창 너머 보이는 것은 겨울이었고, 여름이었고, 도망치고 싶었던 나의 현실이었고, 뛰어들고 싶었던 회피의 공간이었다.

물 위에 부유하는 수련에 닿아 부서지는 빛이 찬란히 느껴졌다. 수련이 그토록 빛나는 것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었다. 깊은 물 속, 푸르기보다 짙은 빛이 하이얀 수련을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둠을 찾아 들어갔지만 뒤돌아 본 곳에는 언제나 빛이 있었다.


전시장을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 사이로 스치는 시선에도, 마음 한켠에서 느껴지는 고독에도, 이제 두렵지 않았다.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치유라는 것은, 눈 돌린 곳이 아니라 나아가는 방향 그 자체임을.

뒤돌은 곳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그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몸을 감추었다. 반대 방향으로 사라지는 뒤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의 길이 불확실하고 때로는 혼자가 되기도 하겠지만, 이제 나는 그림자를 쫓는 대신 내 걸음으로 세상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빛과 어둠 사이,

내 마음은 아직 열려 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그저 흘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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