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불안'과 '가짜 불안' 구분하기
남편과 사별한 던은 딸 멜라니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입학하게 되자, 극도로 불안해합니다.
그녀의 불안은 사소한 일에도 촉발되죠.
새로 이사 온 옆집 남자가 자신을 감시하며 괴롭힌다고 믿던 던은 작은 소리만 나도 남자가 집을 염탐하러 왔다며 한밤중에 딸을 깨우고 경찰을 부릅니다.
딸은 엄마의 마음이 고장 났다는 걸 알게 되고 엄마의 곁에 남기로 합니다.
사실 옆집 남자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였지만 던은 계속해서 자신의 집에 그가 찾아올 거라는 불안 때문에 결국 집을 나가 노숙까지 합니다.
딸은 가짜 거미를 보며 진짜 거미가 나타났다고 불안해하는 엄마에게 매일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언젠가 엄마도 거미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며 수치심을 겪는 사람에겐 불안이 삶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경고해 주는 신호가 되니까요.
불안은 이유나 목적 없이 출현하진 않는다는 거죠.
영화에서 엄마인 던의 불안은 남편과의 사별에서 시작됐죠.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불안에 빠진 사람은 외부의 충격을 감당할 만한 마음의 에어백이 없습니다.
남편을 잃은 고통은 그녀의 불안을 가속화시켰고, 불이 붙은 정신은 모든 것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남편과의 이별을 충분히 애도하며 상처를 회복했다면, 불안으로 인한 편집증을 앓지는 않았을 겁니다.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은 우리가 거부해서 승인되지 않고 회피당하는 감정은 집요하게 수단과 방법을 찾아 존재를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불안을 숨길수록 불안의 몸집은 커지고, 끝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거죠.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나요?
긴장과 초조함으로 손에 땀이 나고 몸이 경직되나요?
옆에서 울며 매달리는 아이에게조차 눈길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좁아지나요?
그러면 이렇게 질문해 보세요.
앨런 보라는 ‘진짜 불안’과 ‘가짜 불안’을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진짜 불안은 나의 삶과 관련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반면, 가짜 불안은 우리 몸이 신체적으로 불균형한 상태임을 스트레스반응을 통해 알리죠.
다시 말해, 진짜 불안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가짜 불안은 과도한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겁니다.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서 스트레스를 느끼면, 뇌는 ‘뭔가가 잘못됐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뇌는 그 불편한 감정을 설명해 줄 서사를 찾기 시작하죠.
객관적인 증거 없이, 남편이 외도를 한다거나 아내가 자신 몰래 대출을 받아 명품 가방을 샀을지도 모른다며, 그래서 자신이 불안한 거라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한 감정이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아내가 나를 속이며 돈을 펑펑 쓰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거나 삶에 활기가 없어 무력한 기분을 느껴서는 아닌가요?
사춘기가 된 아이가 말수나 웃음이 적어지고 부모와 눈 맞춤을 피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때, 진짜 불안은 아이에게 심리・성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아이의 변화에 맞춰 부모의 상호작용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하지만 가짜 불안은 아이가 부모를 싫어해서 반항하는 것이라고 느끼게 하여 아이와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죠.
즉, 가짜 불안은 사실을 왜곡시켜서 받아들이게 합니다. 가짜 거미를 보고 진짜 거미라고 확신하는 것처럼요.
불안한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에 관해 과도한 방어 자세를 취하죠.
아이가 거짓말로 용돈을 더 받아내면 돈을 줄 때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추궁하게 됩니다.
상대가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결국 또 그럴 거야.’라고 부정적으로 예언하죠.
그런데 상대가 다신 안 그러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잘못을 하지 않을 때조차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럴 거야.’라며 불안해합니다.
그러다 만약 자신의 예상대로 되면 ‘그래. 내가 불안해한 건 당연한 거였어.’라며 자신의 불안이 타당했다고 합리화하죠.
이런 사람들의 입에선 ‘하지 마.’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어차피 안 될 거니 시도도 하지 말라는 거죠.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 믿고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사고와 행동의 방향이 맞춰집니다. ‘내 예상이 맞았어.’가 아니라 ‘내 불안이 맞도록 나를 불안에 맞춘 거죠.’
불안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상대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많아지고, 결국 자신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관계가 무르익기 전에 미리 선수를 칩니다.
일부러 상대에게 트집을 잡거나 사소한 일에 화를 내며 관계를 단절시키죠.
다른 사람과 친해지면 그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될까 봐 불안해서 일부로 실패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실패가 잦아지니 불안은 더 심해지는 거죠.
아이에게
너 그렇게 공부하면 시험 망칠걸?
너 그렇게 엄마, 아빠를 막 대하면 용돈 못 받을 걸?
너 그렇게 옷 입으면 애들이 뭐라고 할걸?
너 그렇게 심하게 장난치면 왕따 될걸?
너 그렇게 놀기만 하면 대학도 못 갈걸?
어떠세요?
아이가 시험을 망칠까 봐, 용돈을 못 받아서 친구들한테 돈이라도 빌릴까 봐,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할까 봐, 대학에 못 갈까 봐......
내가 불안해서 아이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하고 있진 않나요?
그러면 아이도 불안한 사람이 되어 어차피 안 될 거라고 믿으면서
자신이 이룰 수 있는 모든 성공에서 도망칠지도 모릅니다.
다음 시간에는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게요.
참고문헌
엘런 보라 (2023). 내 몸이 불안을 말한다(신유희 역). 서울: 위즈덤하우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