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경험한 시간의 힘에 대하여
이전에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부산에서 개원의 생활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현재 서울로 이사를 하고 봉직을 하고 있습니다.
9년차 개원의로서 그리고 현재 봉직을 하면서 제가 환자들에게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을 꼽자면 바로 제목 그대로 입니다 -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는 나아질 거예요 :)
정말 오랜만에 저의 진료실 이야기를 나누게 되네요. 최근 이사를 오고 봉직의로 진료실 생활을 시작하면서 숨 가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브런치를 시작해야지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문득 행운목을 키웠던 이야기를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행운목이 처음 진료실에 왔을 때의 모습이 위 사진입니다. 2019년 4월, 점심을 먹으러 부산 해운대 개원 병원 앞 모 백화점에 들렀다가 지하 식품관 옆 작은 화분 코너에서 이 행운목을 처음 만났더랬습니다. 아주 작고 볼품없던 세 줄기가 어떻게 이렇게 변했는지, 언제부터 함께였는지 궁금해 사진첩을 뒤져보았죠.
"행운목을 키우면 좋은 운이 온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났고, 당시 3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충동적으로 구입했습니다. '별 기대는 하지 말자. 그저 진료실의 무료함이나 달래보자' 하는 마음으로 작은 물컵에 담아 사진을 찍어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잎 하나 없이 앙상한 줄기 세 개가 정말 썰렁하기 그지없었죠.
그렇게 매주 한 번씩 잊지 않고 물을 갈아주기를 실천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에서 얻은 수경 관리 원칙 그대로 꾸준히 보살폈더니, 2021년 7월 14일 찍었던 사진을 보면 훌쩍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행운목이 제 눈앞에 있었습니다. 처음엔 작은 물컵에 겨우 담겨 있던 것이, 이제는 멋지고 긴 화병으로 옮겨져 세면대 한켠을 늠름하게 차지하고 있었죠. 2년 반 가까운 시간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고 그 경험을 블로그에 썼던 기억도 새록새록 납니다. 초라했던 처음 모습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제 진료실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뽐내고 환자들이 어떻게 키웠냐고 문의하기도 하면서 정말 뿌듯한 추억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최근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내원하시는 분들이 부쩍 늘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부담스러워하고, 정신과 질환은 치료되지 않는다는 편견 때문에 힘든데도 참고 지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을 위해 오늘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초진으로 오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는 "얼마나 걸릴까요?"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는 시간이 걸리지만, 분명한 건 치료자를 믿고 함께 가다 보면 시간이 지나서 점차 좋아지실 거예요."
보잘것없던 저의 행운목이 2년이 지나 눈에 띄지 않던 존재에서, 진료실 한 공간을 환하게 밝히는 존재가 된 것처럼 말이죠. 일단 용기 내어 정신과에 오셔서 치료자와 함께 천천히, 시나브로 치료를 받다 보면 반드시 좋아지는 시기가 옵니다.
시간의 힘을 믿고 치료하신다면, 정신건강의학과적인 어려움도 분명히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개원할때나 봉직시에나 가장 많이 하는 말은요,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는 나아질 거예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