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만약 3일 뒤 모든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암흑 선고가 내려진다면 당신은 남은 72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한다. 예고 없이 생을 덮친 암흑 선고 대신 나에게 사흘이라는 유예가 주어졌었더라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한 번도 보지 못한 멋진 풍경 앞에 서 있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소들’을 찾아 헤맸을까.
‘만약’이라는 질문을 붙일 틈조차 없이, 그 어둠은 불가항력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찾아왔다. 피할 시간도, 준비할 새도 없이.
실명 선고 후 모든 치료가 끝난 어느 날이었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고요를 흔들었다. 놀란 가족들이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거의 미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내가 안 보여야 하나요? 왜 하필 나여야 하나요!”
대답 없는 물음, 냉정한 침묵 앞에서 허공을 가득 메운 울음은 가시처럼 돋아났다. 그 파도는 온 가족의 마음을 거세게 할퀴고 나서야 잠시 고요해지곤 했다. 어차피 나의 시간은 줄곧 한밤중이었기에, 그때가 낮인지 밤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기필코 내게 고난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도무지 해석되지 않는 고통 앞에서는 그 침묵조차 납득되지 않았다. 나에게만은, 우리 가족만큼은 이런 시련이 비껴가길 바라는 마음이 어째서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너는 안 되는데? 어째서 너만 예외여야 하는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히 올 것처럼 살아간다. 나 역시 그랬다. 평범한 하루를 달력 넘기듯 흘려보내고, 별일 없는 오늘을 무심히 소비했다. 그런데 조금만 세심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내일의 안녕을 장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난이 자기 삶에는 닿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산다는 것을.
깊은 마음속 심해에서 떠오른 이 묵직한 질문은 삶을 좀 더 입체적이고 면밀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시련 앞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 삶의 고난을 피해 갈 수 있는 프리패스권은 세상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을 나는 그해 서른넷에 이르러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내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마치 개인만의 몫으로 여겨지는 그 고통은 언제나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내가 어둠 속에서 경험한 감각은 결국 이 사회 곳곳의 그늘과도 이어져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설령 72시간의 유예가 있었다 해도, 나는 제각각의 슬픔의 모양을 이토록 세심하게 보지 못했을 것이다. 시력이 사라진 자리에 더 깊은 시각이 찾아와 자리를 채웠다. 어두워지고 나서야 다른 이들의 한숨이 더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의 시선은 더 깊은 곳까지 닿았다.
며칠 전 강의 의뢰를 받아 어느 특수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가는 길이 꽤 멀었는데 이 거리를 매일 오갈 아이들을 생각하니 나의 어둠보다 더 깊은 피로가 느껴졌다. 승용차로도 한참이 걸리는 길을 아이들은 매일 긴 시간 스쿨버스를 타고 가며 친구들을 태우고 내리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없던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의 얼굴이 유독 피곤해 보였던 이유를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신규 교사였던 시절, 그러니까 어두운 터널로 들어서지 않았던 그때. 매일 아침마다 긴 통학 시간을 견딘 아이들은 나를 보면 피로를 잊은 듯 해사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곤 했었다. 그때는 아이들의 피곤보다 그저 그 미소가 좋았고 예뻤다. 그 웃음을 문득 떠올리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내가 보게 된 것은 내 어려움만이 아니라는 것을. 무지개 너머에도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바로 보게 되었다.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볼 수 있는 현실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아이들의 통학 거리를 생각하니 이맘때 늘 들리던 한숨 소리가 생각났다. 매년 특수학교 입학을 위해 장애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생을 건 추첨에 뛰어든다. 단 한 번의 추첨으로 울고 웃는 가족들이 있다. 여전히 아이들이 갈 학교는 부족하고 토지 보상 문제나 지역 주민의 반대로 개교가 미뤄지다가 결국 엉뚱한 지역에 학교가 세워지는 일도 일어난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당사자가 아니면 이처럼 쉽사리 귀 기울이기 힘든 일들이 존재한다. 나 역시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고, 가까운 가족조차 품지 못할 때도 많다. 하지만 내가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볼 때에만 비로소 보이는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을 볼 때에만 열리는 세상이 분명 있다.
결국 깊숙한 곳까지 밝히는 건 찰나의 화려한 불꽃이 아니었다. 어두운 터널 속을 거닐 때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들 중 가장 밝은 것을 가지고 왔다. 가장 환한 것으로 밤인지 낮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게 걸어두고 갔다. 그 후로 무채색이던 나의 하루는 제법 다양한 색으로 채색되어 갔다.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나는 마지막 72시간을 그리 특별하게 보냈을 것 같지는 않다. 여느 날처럼 모닝커피를 내리고 남편과 마주 보며 식사를 했을 것이다. 소년과 소녀들이 기다리는 학교에 늘 그랬듯 출근해서 하루치 수업을 해내고, 평범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다만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다가 여운이 남는 눈인사를 나누고서야 돌아섰겠지.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오래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 질 녘 발그레한 풍경에 젖어들다가 별이 총총 뜨는 밤을 느린 속도로 맞이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며 깊이 팬 주름의 개수를 세어보고, 남편 얼굴의 작은 점 하나까지 기억해 두려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처럼 사소한 일상들이야말로 내가 마지막까지 눈으로 다시 담고 싶은 세계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함 속에서 반짝이던 빛들을 떠올릴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별빛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던 그 눈빛 안에, 마음속 온기 속에 이미 밝게 켜져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