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시 그린-소주병 대신 내가 잡은 것.

여섯 개의 점에는 우주가 있다.

by 유니크한J

빛이 들지 않는 아침을 만났다. 새벽이 어둠을 힘껏 몰아내도.


창문 밖에서 흘러드는 새의 지저귐,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볍게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청명함. 하루의 시작을 여는 아침 풍경은 모두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지만 빛을 도둑맞은 나만 달라져 있었다. 허공을 휘저어 본 내 손등 위로 목련 꽃잎 하나가 아스라이 흩날려 떨어졌다.


꽃들도 앞다투어 존재를 틔우던 분주한 3월, 나만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모든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내가 발 딛는 세상만 달라져 있었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은 단차와 턱이 있었던가? 윗집에서 물 내리는 소리, 승강기 오르내리는 소리도 새삼 선명해져 있었다. 익숙한 집 안에서도 열어 둔 방문에 머리를 부딪힐 수 있다는 사실, 작은 모서리 하나가 그토록 뾰족하게 와 박힐 수 있는지 그전에는 알지 못했다. 당사자가 되어야만 보이는 세상이 분명 존재했다.


그대로 복직할 수 없는 사정으로 나는 학교에 휴직을 신청했다. 이미 지금의 의학으로는 시신경을 되살리기가 어렵다는 암흑 선고를 받은 이후였다. 더 이상 다른 병원 문을 두드리는 건 무의미했다. 가족회의가 열렸다. 가족들은 시각장애인이 된 내가 새로운 세상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찾아냈고, 나는 재활 후 복직을 목표로 새로운 배움 길에 올랐다. 사실은 남편의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보내졌다는 말이 맞겠다.


첫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묘하게 다른 공기가 스쳤다. 또각또각 소리가 교실 안을 메우고 있었다. 낮게 깔린 숨소리들이 서로를 의식하는 듯 조심스러웠다. 낯선 기척 속에서 나는 다시 학생이 된 듯, 쭈뼛거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빨리 나오셨다고요? 보통 2~3년은 집에서 인생 비관하며 소주병 좀 잡다가 나오시던데….”


두 달 전 의료사고로 중증 시각장애인이 되었다는 내 소개에 우리 반 반장님이 건넨 말이다. 정말 내가 술을 잘 마실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매일 소주 두 병은 마실각이 틀림없었다. 재활을 위해 문을 두드린 곳은 후천적으로 빛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점자나 흰 지팡이 보행법, 컴퓨터 사용 등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곳이었다. 더는 전의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직업 재활교육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제는 눈이 아닌 소리와 감각으로 생존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첫 수업에서 손에 쥔 점필은 낯설고 익숙지 않았다. 시각장애인들의 또 하나의 언어인 점자는 흰 종이 위에 끝이 뾰족한 점필로 점을 찍어 표현하는 방식이다. 뾰족한 끝이 종이를 파고들며 툭 소리를 낼 때마다 작은 모래알이 생겨나 손 끝에 만져졌다. ‘이거 손톱 밑에 찔리면 꽤 아프겠다’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날이 너무 좋아서, 쨍하게 화창한 그 향기가 너무 고와서 딱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마치 어두운 미로 속에 갇힌 외톨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빛이 얄미워 오히려 흐린 하늘이, 궂은 날씨가 위안이 되던 순간도 있었다.


걷다 보면 아무런 예고 없이 소나기를 만날 때가 있다. 우산도, 우비도 없이 그대로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아야만 하는 날. 그런 날은 그저 흠뻑 젖은 채로 이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작정하고 퍼붓는 소나기를 무슨 수로 피할 수 있었겠는가? 피할 수 없어서, 그대로 다 젖어야만 끝나는 그런 날. 왈칵 다 쏟아내고, 퍼부어야만 지나가는 인생의 소나기가 있다.


그 소나기 끝에서 나는 여섯 개의 점을 만났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그 시작은 낯설고 서툴렀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또 하나의 창을 내는 일이었다. 나에게 점자는 눈으로는 더 이상 닿을 수 없게 된 세상과의 연결이었고 그렇게 열어둔 창 너머로 선명한 여섯 개의 별이 다가와 촘촘히 박혔다.


여섯 개의 점들은 서서히 하나의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어갔다. 나는 그 별들을 정성스레 이어 은하수를 만들었다. 모래알 같던 점들은 어둠 속에서도 총총히 빛나 나의 우주가 되어갔다.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그렇게 별을 만져 보았다. 손끝으로도 우주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재활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와 같은 상실을 겪은 이들이 곁에 있었다. 아픔을 지나온 이가 또 다른 아픔을 품은 이의 고통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삶의 소중한 것을 잃어 본 이가 텅 빈 상실 속에서 오는 막막함과 공허한 자리에 다가와 마음을 포개어 두고 갔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삶은 이어졌다.


“앞으로 벽을 만날 때 할 수 없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세요! 삶은 할 수 없는 이유들로 꽉 찬 것 같지만 찾으면 방법은 분명 있어요!”


약속된 휴직의 시간이 끝나 갈 즈음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두려워하던 나에게 재활 선생님이 건네준 말이었다. 사실 내가 붙들고 있던 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복직하지 못한 채 낙심하며 하루를 흘려보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생의 소나기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가는 이들이 내 등을 떠밀어 주었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손을 잡아 함께 걸어준 이들 덕분에 재활의 시간을 무사히 마친 나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교단 앞에 다시 섰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내가 사고 후 초록색 소주병 대신 붙잡은 건 다시 일어설 용기와 희망이었다.


다시 그린 내 하루는 이해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는 어제를 껴안는 대신 그럼에도 살아볼 용기가 되어 내일을 향해 담담한 걸음을 내딛게 했다. 나에게 삶은 극복해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오롯이 살아내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어둠도 결국 내 존재를 밝히는 빛을 빼앗아가지 못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내 자리에 나로 존재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은 소리로, 촉감으로, 향기로 목청껏 힘주어 존재를 알리고 간다. 마치 이 하루가 당연함이 아닌 다시 그린 인생의 보너스 트랙이라고 노래하는 듯하다.


어쩌면 나에게 빛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온 생애를 걸고 살아내어야 하는 삶인지도 모르겠다. 흘러가는 시절 속에서 누군가는 초록 신호등 불빛 아래 멈춰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저마다의 리듬으로 제 신호를 기다린다. 나는 오늘도 또각또각 별빛을 찍으며 다시 그린 자리 위에서 뚜벅뚜벅 내 몫의 하루를 이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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