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읽지 못한 손편지
나에게는 끝내 읽지 못한 손 편지가 있다.
“선생님 제가 점자로 써 오면 편지 읽으실 수 있으세요?”
우리 반 소녀가 수줍은 목소리로 내 곁에 와서 건넨 말이다. 어제 제과제빵 학원에서 만들었다며 자색 고구마빵 한 봉지를 내밀었다. 지연이가 만든 빵은 유난히 빛깔도 곱고 맛도 좋아 우리 반 모두가 기다리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어머, 지연아 점자를 들어본 적 있어? 선생님은 네 편지를 점자로도 읽을 수 있지만 소리로도 읽을 수 있어. 메일이나 휴대폰 메시지로 보내도 괜찮아.”
“그럼 선생님은 귀로 편지를 읽으시는 거네요?”
소녀의 말에 웃음이 났다. 아마 점자가 낯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낯섦을 건너 진심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속도는 느려도 상대에게 가장 가깝게 닿길 바라는 소녀의 마음씀씀이가 예뻐서, 가슴 한켠이 시큰해왔다.
사고 이후 삶의 많은 부분들이 달라져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나는 노트북 화면을 소리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교과서와 참고 자료를 읽는다. 종이책이 아닌 오디오북이나 텍스트 파일을 귀로 따라가는 게 이젠 익숙하다. 물론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펼쳐지는 일상뿐만 아니라 내 여행이 남기는 한컷, 특별한 시간을 기억하는 포즈도 많이 달라졌다. 눈으로 풍경을 담던 여행은 이제는 오감을 열어 기억되는 장르로 바뀌었다.
라벤더 향이 따라오던 보랏빛 산책길, 여수 여름 밤바다의 끈적한 공기와 뒤섞이던 문어 삼합의 쫀득한 맛, 주왕산 폭포에서 코끝을 서핑하던 겨울바람의 여운.
강릉 테라로사 카페를 채운 묵직한 원두 가는 소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섞여 작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울리고 있었다. 그 리듬에 맞춰 걸어본 공간은 내 걸음으로 딱 50보.
이것이 내가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온몸으로 각인된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만의 유니크한 포즈가 되고 있다. 어쩐지 더 선명하고 오래 기억되는 방식으로.
결코 잊히지 않는 여행이 있다. 그 여정은 지금도 내 마음에 선명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방학이면 곧잘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특히 8년 전 겨울, 그녀들과 함께한 제주도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 동기 넷과 다녀온 겨울 제주도. 우리는 대학생 시절부터 스스로 ‘에프포(플라워 네 송이)’라 부르며 늘 함께 다녔다. 나를 나로서 기억해 주는 존재, 주저함 없이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사이. 그런 친구들과의 여행이라 더 특별했다.
여행 둘째 날 아침, 전복죽 맛집 앞에 줄을 섰다.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기에 근처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여행의 특별함을 더해준 이상한 우체통을 만났다.
지금 편지를 써넣으면 한 달 뒤에야 배달해 주는 느린 우체통이었다. 모든 것이 빠름을 자랑하는 시대에 느린 손 편지는 낯설고도 낭만적이었다. 더불어 한 달 뒤 도착 한다고 하니 어쩐지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설레기까지 했다.
우리는 각자 소중한 이들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딸에게, 또 다른 이는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여행지의 기분 좋은 공기를 담아 남편을 떠 올리며 펜을 잡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쓰지 못했던 말들이 스르르 흘러나왔다.
또 다른 엽서에는 한 달 뒤 새 학기를 앞두고 분주할 나 자신에게 써 내려갔다. 힘내라는 응원을 가득 담아 또박또박 손글씨로 엮어 우체통에 넣었다.
제주 바다 위에 수채화처럼 번지던 보라와 주황빛 노을, 비자림 숲을 오가던 자몽 향 어린 햇살, 진분홍 동백꽃의 잔향. 그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났다. 여행을 다녀온 지 딱 일주일 뒤였다.
제주에서의 손 편지가 떠오른 건 시간이 제법 흐른 뒤였다. 느린 우체통이 생각났던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중요한 엽서 두 장이 오기로 되어 있는데, 혹시 우편함에서 못 봤어?”
이미 친구들은 느린 편지를 받은 지 한참이 지난 뒤였다. 그 시절 그렇게 우리에게만 시간은 유독 느린 걸음이었다.
“우편함에 편지는 없던데… 관리비 내라는 청구서만 있던데 뭘.”
남편 목소리의 미세한 진동을 나는 느꼈다. 편지에 대해서는 시큰둥 한 남편은 다른 이야기로 급하게 화제를 돌려버렸다.
‘한 달 뒤면 온다더니 몇 달이나 지났는데, 도대체 왜 안 오지?'
그 편지의 행방이 무척 궁금했다. 내 글씨로 직접 썼을 손 편지여서인지, 눈으로 기억되는 마지막 여행이었기 때문인지 그 경계는 점점 모호해졌다. 끝내 읽지 못한 내 손 편지는 어디로 갔을까?
사무치게 아까운 그 시절, 내 부서진 계절은 여전히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빈틈없이 채색된 나의 네모난 풍경은 어디서 머무는지 결국 내게 닿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편지를 기다리듯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날들도 있었다. 내 발은 현재를 딛고 서 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 시간의 제주도 저녁노을 앞을 서성이다 오곤 했다. 그저 시간이 그대로 멈추길 바라기라도 하는 듯.
얼마 전, 잊고 지냈던 새로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소녀에게는 낯선 점자라 서툰 표현도 있었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였다. 지연이는 점자 일람표를 보고 독학으로 익혀 편지를 써 왔다. 마치 그 시절 내게 닿지 못했던 손 편지가 제자의 점자 편지가 되어 돌아온 것 같아서 반가웠다.
인생을 여행하듯 살아가고 싶었다 나는. 잘 짜인 코스대로 관광하듯. 그러나 완벽하게 계획된 여행도 때론 어긋나는 소리를 낼 때가 있다. 삶은 내가 생각지 못한 방향과 방법으로 길을 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는 여전히 두렵고 떨렸다.
그러나 나는 오늘이라는 지도 위에 하루치의 용기를 내딛는다. 느리게 가더라도 이 여정을 중간에 끝내고 싶지 않다. 제자가 건넨 손 편지처럼 예기치 못한 기쁨은 이 여정을 완주하게 하는 힘이 된다.
인생을 여행하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내 삶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의 온도는 여전히 식지 않았다. 파랑 물감에 빨강이 떨어져 새로운 색이 되어도, 그마저도 아름다운 비깔이 되지 않는가? 오늘도 나는 삶을 여행하는 중에 잠시 멈춰 서 본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편지를 써 내려간다.